'좋아하는 일을 하든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든가'라는 어느 글귀를 읽고, 여기서 나는 어느 노선을 타고 있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말고는 어떤 것에도 큰 관심을 가져본 적 없지만,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못내 쑥스러운 일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는 것도, 짧은 지식으로 많은 것을 아는 척하는 것도 참으로 어색하고 어렵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흥미로운 일은 없는지 오랜 시간 기웃댔지만 딱히 선택하고 싶은 다른 일이 없었다.
나는 가르치는 일이 싫으면서도 그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을 아주 성실하게 이행했다. 일을 하면서도 역시 예상대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말마다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학생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야 하는 것도,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하는 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사명감 같은 것이 딱히 있지도 않았는데 나는 열정적이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느새 나쁘지 않은 선생이 되어 있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상한 기분이어서 이 일에 대한 내 입장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날은 어느 한산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져주시던 헤어 디자이너 언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미용실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는지. 그분은 머리카락을 다루는 폼이 너무나 꼼꼼하고 노련해서 한눈에 봐도 굉장히 오래 이 업을 해 오신 듯했다. 머리를 하다가 그런 질문을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한데 그 분과 대화가 잘 되던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나의 고민이 투영된 질문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 들은 그분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럼요, 이 일이 지긋지긋해서 다른 일을 아르바이트로 해 보았지요. 카페에서 커피도 만들어보고요. 그런데 다른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시간에 손님들 머리 감겨드리는 거 한 번 더 연습해 보고 싶더라고요. 하는 일이 본인에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 일을 좀 겪어보면 알아요."
그런 이유로 그 언니는 미용실로 회귀했던 것이다. 내가 다른 길을 기웃대면서도 결국엔 넘어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다른 전공으로 석사를 이수할까 싶다가도 다른 길도 그리 쉽거나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또 우연히 흥미로운 콘텐츠를 보면 수업시간에 활용해 볼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가. 책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참 공감이 되는 구절이었다. 내가 선택한 줄 알았더니 사실은 간택당한 게 아닌가 싶다.
운명 같은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뭔가 자의적으로 거스르기 어려운 강물 어느 한가운데 몸을 담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음에 부침이 심해서 다른 곳으로 발을 옮기고 싶어도 결국 그냥 이렇게 있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이걸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인데도 하면 할수록 활력을 얻는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기도 하니까.
여전히 스스로를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만 정의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일에 매몰되어 지낸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학생들에게 애써 하고, 수업 준비를 형형 색색으로 꼼꼼하게 하면서. 그래서 그냥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쪽으로 노선을 선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