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MAMBA Jan 23. 2022

세상에 나쁜 질문은 진짜 없을까?

필요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하는 법

학부생 시절, 교정을 거닐며 도서관 앞을 지나갈 때였다. 마침 국제학생의 날이었는지, 달이었는지, 여러 국기가 휘날리는 행사장(처럼 꾸민 광장)에서 아시아센터 소장님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빨리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자야지 했던 것은 어느새 까맣게 잊은 나는 어느덧 먼발치에 서서 그 연설을 듣고 있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그 연설에서 내가 깨닫게 된 건, '한국은 질문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행사가 치러지던 도서관 앞 공터.


사실 질문하지 않는 것은 비단 학생들 뿐만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 폐막식이 끝나고 한국 기자단에게 발언권을 부여했을 때 그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어른이라고, 직장인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교수님들은 으레 '질문 있는 사람?'하고 강의를 마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이 미 없는 것임을 안다. 왜? 손을 드는 순간, 교수님의 말 보따리를 여는 꼴이고, 그렇게 집으로 가려고 일어났던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앗아가는 길인가.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한 확신 또한 없다. 내가 하려는 질문이 다른 애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 혼자 이해하지 못해서 되묻는 것이면 어떡할까, 내 질문을 듣고 다른 사람들이 미 웃으면 어떡할까, 고작 질문 하나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소장님 또한 한국에서 공부하던 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물며 질문하는 학생들이 너무도 '당연한 질문'을 물을 때에는 '멍청한 질문을 한다'며 비웃었다고도 했다. 한국 애들이 공부 잘한다더니, 한심해. 이렇게 생각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그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그리고 교수님들은 제 아무리 당연한 질문을 할지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성심을 다해 답해주었고, 질문은 꼬리를 물고 물어 근본적인 개념에 대해 논의해보는 주제로 발전하곤 했다.


"쓸모없는, 당연한 질문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질문하세요!" 소장님의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미국엔 질문을 한다고 눈치를 주거나 눈을 흘겨 뜨는 사람이 없었다.


질문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사람은 왜 생각이란 걸 할까. 무엇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까? 다소 철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배고프니까 사냥을 해서 먹어야지'가 아니라, '배가 고프네, 뭘 먹으면 좋을까? 어디 가서 먹으면 좋을까? 누구랑 먹으면 좋을까?' 하고 또 다른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 주는 힘. 질문이야말로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입사 후, 내가 제일 많이 듣고 있는 말은 ‘질문 없나요?’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일하는지 자문해보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제시하라고도 한다. 회사 사람들은 도대체 왜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일을 의심하고 자문하라고 할까? 아마도 익숙함에 속아 충분히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놓칠 일을 경계하는 것일 터였다. 여기서 알 수 있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그대로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진짜 '멍청한 질문'은 없는 걸까?


질 좋은 질문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


1) 질문을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맥락과 개념을 파악한다. 


회사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고 하자.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점수를 받고 입사한 신입 사원. 회의에 들어가기 위해 상사는 직원에게 다섯 부의 복사를 맡겼다. 그때, 직원이 묻는다. '근데... 복사는 어떻게 해요?' 


물론 복사하는 방법을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대학교 1-2학년 때는 복사집 사장님께 usb만 넘기면 됐고, 3-4학년 때는 컴퓨터에서 버튼만 누르면 학교 프린터가 알아서 해준 일이었기에, 입사 후 처음으로 복사기 앞에 섰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았던 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가져야 할 질문의 종류이다. 먼저 이것저것 눌러보고 결과물을 본 뒤에 그래도 안된다면 내가 시도해본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물어보는 것. 예를 들면, '제가 A와 B 안을 시도해봤는데 안돼서요. 혹시 대리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셨어요?"처럼 내가 그냥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무엇을 시도했고 그래도 안됐기에 질문하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과도하게 상사의 눈치를 보고 열심히 일한 척을 하라는 말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라는 말도 아니다. (아마도 잘 모르면서 아는 척 질문하면 그 시절을 겪어 본 상사들은 당신이 '척'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것이다) 질문을 듣는 사람이 질문자가 무엇을 묻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뜬구름 잡는 질문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일수록 질문을 듣는 사람도 대답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질문하기 전에 먼저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를 훑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시도해보는 것이다.


무턱대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질문하면 '생각 없이 말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에 십상이니까. 


2) 되묻기 질문을 통해 내가 들은 것을 확인해본다.


'되묻기 질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질문이다. 학생 때부터 학부생, 대학원생, 그리고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써왔고,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쓸 유형의 질문이다. 


되묻기 질문의 시작은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 OJT라는 둥, 온보딩 프로그램이라는 둥, 사내 교육이라는 둥 많은 종류의 교육을 받게 된다. 학교와 직장의 교육은 특히 '기간'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를 가지는데, 학교는 2년에서 4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교육에 힘쓴다면, 직장에서는 짧게는 수일, 수 주에서 수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야, 회사의 입장에서 교육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교육은 짧고, 직원은 빨리 배워서 회사에 이윤을 쌓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회사의 존재 이유이고, 우리가 직원으로 뽑힐 이유일 테니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듣게 되면 우리의 뇌는 학생 때 익히 해봐서 알겠지만 빠르게 망각하고 잊는다. 그리고 교육 내용을 복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복습'이다. 교육 시간에 받아 적은 것들을 다시 깨끗하게 적어보거나 문서 파일로 정리해 놓는다. 생각해보면 회사 생활도 학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복습을 통해 만약 똑같은 실수를 한 게 있다면 줄이고, 새로 배운 것이 있으면 한 번 더 눈으로 익숙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자주 쓰는 문서 양식이라거나, 회사에서 사용하는 특정 기술과 같은 것들이다 (아웃룩 이메일에서 메일 회수를 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한번 들은 뒤에 복습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오타가 가득한 형편없는 이메일을 상사가 읽기 전 회수하지 못하고 결국 한 소리 듣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은 다른 사람에게 되묻는 질문이다. 신입사원이나 주임처럼 회사에서 비교적 낮은 직급에 위치해 있다 보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기보다는 '지시받을'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내가 다른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시는 것 같은 교수님들처럼 할 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오늘 오후까지 뭘 보고 해야 하고, 내일 아침까지는 자료를 준비하고, 모레 점심까지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모레 오후에는 고객사 미팅을 하고, 그다음 날엔.... 잊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메모를 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할 것이다) 하지만 되묻기 질문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거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해보고 상대방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나는 '정리하자면'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그것이 마치 리포트를 쓸 때 'Finally' 나 'To sum up'처럼 서론과 본론 가로 치르며 달려온 대장정에 맞춤 표를 찍는 느낌이라 그렇다. 이 말로 운을 떼고 '내가 해야 한다고 들은 것'들을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럼 오전 중에 1번과 2번을 마치고, 오후에 3번을 정리한 뒤 말씀드리면 되는 거지요? 몇 시쯤 드리면 좋을까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있으면 이때 나의 말을 들은 사람이 고쳐줄 것이므로 나는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상사의 입장이 된 후에도 반대로 '정리하자면 내가 oo 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전에 1번과 2번, 내일 오후까지 3번을 해주면 돼요.'라고 말해줄 수 있겠다. 


마치며, 


혹자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월급 받고 나의 노동력을 주는 데 감사해야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나에게 되물을 수도 있다. 우리의 목표가 그냥 다닐 때까지 다니다가 퇴사하는 거라면 거기서 그쳐도 좋다. 하지만 우리에겐 승진과 월급 인상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되묻기를 해도 놓치고 실수하는 것들이 생기는데, 하나라도 쓴소리 듣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 04화 입사 후 바로 실무 vs 기나긴 트레이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