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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Jun 01. 2022

2022년 열여덟 번째 주

5월의 첫 주

열여덟 번째 주를 보내며,


오미크론 확산세가 줄은 건지, 사람들이 더 이상 열정적으로 검사를 받지 않게 되어서 인지는 몰라도 확진자의 수가 점점 감소함에 따라 우리 회사도 복귀 정책을 내어 놓았다. 5월에 50프로, 6월에 70프로, 7월에는 모든 직원이 모든 요일에 사무실로 복귀를 하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5월부터는 나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출근을 하게 되었다.


많이 따뜻해진 7시의 아침 햇살


처음 입사했던 주부터 2번 나오던 것이 한 번으로 줄고, 그 한 번도 100프로 재택으로 전환되어 온보딩 기간 거의 모두를 집에서 보냈던 나에게 좋은 소식인지, 아니면 나쁜 소식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컴퓨터 화면 속으로 보던 어딘가 실재하였으나 체감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직접 만날 수 있고, 왕복 네다섯 시간의 출퇴근으로 몸이 더 피곤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컴퓨터로 일하는 나 같은 사무직에겐 그저 똑같은 일의 반복일 뿐.



연등회


광화문에서 보내게 될 5월이 기대됐던 이유는 바로 ‘연등회’ 때문이다. 2018년 처음으로 찾았던 5월의 청계천은 색색깔의 예쁜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무려 LG폰으로 밤에 잘 나오지도 않는 사진을 어떻게든 담아보겠다고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회사로 가는 길목에도, 우리 집 근처에도.


커다란 렌즈가 달린 DSLR과 이제껏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 둔 종이 더미를 짊어진 채로 아침 6시 40분 전철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서 나와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바로 청계천이었다. 초등학교 때 현장학습으로 들렸던 청계천을, 어딘지도 모르고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왔던 청계천이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장소의 한가운데에 있는 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지독한 길치다.)


약간 트위터 감성처럼

해가 길어져 정시퇴근도 아니고 부러 미적거리며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길어진 해는 아직 연등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한 시간 여를 뱅뱅 돌다가 제풀에 지쳐 털썩 앉았다. 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내일의 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내년 연등회에도 또다시 올 수 있길 바라며


https://www.instagram.com/reel/CdkRYkxjdKJ/?utm_source=ig_web_copy_link


어른이 날


어릴 적 나는 어린이날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린이날이면 어디 놀러 갔다 왔다고 자랑하기 바쁜데 나는 항상 공연이며 대회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휴일에 어디 가서 보는 공연은 다 누가 하고 있었겠어…=나 같은 애들이지) 저학년 때는 그래도 꼬까옷 입고 예쁘다, 예쁘다 소리 들으며 공연이라도 했지,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새벽 6시부터 목 풀고 예선에 본선을 거쳐 대회를 나가야 했다. 한 번이라도 경시대회 같은 곳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냥 툭 가서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5월이 다가오면 괜히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이번엔 안 나가면 안 되냐고 말해봤지만,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다.


(운동의 ‘운’과도 친하지 않지만) 승부욕이 있는 편이라 지기는 싫고, 그렇다고 사람들과 신경전을 치르기는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 올라와 더 많은 아이들과 겨루게 된 뒤부터는 괜찮아졌지만, 서로 그 애가 그 애인 지역 대회 같은 경우는 누가 누구 제자인지, 어떤 걸 잘하는 애인지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들의 신경전도 엄청났다. 엄마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다른 엄마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인지, 조금만 눈을 떼도 어디 누구 엄마가 팔꿈치로 내 머리를 치고, 팔로 밀어서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아홉 살, 열 살 아이를 치는 그 엄마의 심정은 어땠으랴.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대회)가 싫었다. 그냥 재밌게 노래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서.



어른이 되고 제일 좋은 것은 5월 5일이 순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기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순전히 나의 순간이다. 주말부터 5월 5일에는 뭘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더랬다. 경기도 쪽으로, 하루치기 근교 여행을 떠나볼까, 아니면 조금 더 욕심 내서 충북 담양 같은 곳을 가 볼까. 어딜 가고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행복한 고민이 반복되는 나날들.


결국 나는 어김없이 강화로 향했다. 인천에 사는 인천러에게 강화는 제일 만만하고 흔한데 뭔가 어딜 온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곳. 비록 지인 댁에 방문하기 위해서 겸사겸사 찾은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곳에서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래도 관광지에 왔는데 어딘가 구경이라도 가야지 싶어서 열심히 초록창을 두들겨 댔다. 강화에 한옥 성당이라는 곳이 있단다. 좋아,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으로 정했다. 성공회 성당이긴 했지만, 만약 종교적인 갈등 없이 천주교가 우리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면 이런 곳이 더 많진 않았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보낸 이 날.


날이 얼마나 좋던지 여름이 온 것 같아서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한눈에 반한 당고 흑임자 라떼를 먹기 위해서. 흑임자 크림에 찍어 떡을 먹은 뒤에 딱 혈관에 카페인을 수혈할 생각에 들떴다.



미끄덩


엄마가 잔을 놓쳐 내 바지에 음료 전부를 쏟기 전까지는. (애초에 와인 잔이긴 했어…)


즐거운 순간으로 가득 찼던 5월 첫째 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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