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직장은 그야말로 간식이 도처에 널려있는 간식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아침마다 아기천사들을 위한 간식을 준비하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 한우고기를 넣은 죽, 소시지 꼬치, 시리얼, 계란과 요구르트 등 출근 후 몇 시간이 지나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문제가 없었다.
점심식사 후 몰려온 식곤증을 겨우 떨쳐낸 3-4시 즈음엔 밀크커피와 사탕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다. 선생님을 비롯해 상담 오시는 학부모를 위해 커피믹스나 녹차 등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고,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리워드 시스템에 사용하는 사탕과 젤리는 항상 교실 한편에 한 통 가득 구비되어 있었으므로 잠깐 편의점에 다녀 올 시간조차 없는 오후에도 나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사실, 사탕이든 젤리든 입에 뭘 넣는 순간 학생들의 질문공세와 부러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으므로, 간식을 덜 먹게 되는 면이 있었으나, 없어서 못 먹는 것과 있는데 안 먹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퇴근 후 대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심지어 원장님이 손수 내가 먹고 갈(?) 간식을 준비해 주시기도 했었으므로, 나는 그야말로 간식의 바다를 유유히 떠다니는 부표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모두가 점점 살이 오르는 나를 걱정하지만, 또 동시에 모두가 나의 입과 위를 쉴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간식 천국은 이직으로 인해 끝이 났다. 탕비실이 있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인스턴트커피뿐이었던 직장. 회사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주전부리는 모두 자비 부담을 해야 했던 곳. 서울은 밥값도 비싼데 간식까지 사대려니 통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혹자는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간식 없는 회사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이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
회사에서 뭘 먹는 것이 나의 퇴근에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가끔 출출하신 대표님을 중심으로 5시, 5시 반 즈음에 간식 명목으로 떡볶이(등)를 시키곤 했는데, 그렇게 다들 모여 떡볶이를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업무를 마무리지을 시간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더 오래 회사에 남아있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입사를 앞두고 있던 작년 12월. 여느 (예비) 직장인들이 그렇듯 새로운 회사로의 입사를 앞두고 여러 리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과연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찾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한마디.
"다른 건 몰라도 간식은 풍부함."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복지라고 하지만 마냥 복지라고만 볼 수 없는 간식의 존재. 바로 친구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나 새로 들어가는 곳이 간식 천국이래. 메시지를 본 친구가 자신의 회사에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들어왔노라고 답하였다. 잠시간 흐르는 정적.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신서유기나 일박이일의 출연자들은 피디가 무언가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우선 의심부터 하곤 한다. 과연 그 긴 식이 복지인지, 아니면 끝없는 야근을 향한 복선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