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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 Apr 21. 2021

니모의 상담 일기 #6

이번 주엔 퇴사를 한다. 와아- 정말 대단하군! 억지로, 끝까지, 어떻게든 견디는 선택 대신에 지금 여기에서 내가 더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다니. 나에게도 용기와 짬밥이 많이 생겼나 보다. 어쩌다 보니 직장생활 7년 차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명상을 가르친지도 벌써 7년이나 되었다. 지난주 상담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어쩐 일인지 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아프고, 아프니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도 이 결정이 정말 잘 한 결정인지, 정규직 일자리를 벗어나는 나의 삶은 얼마나 불안할지, 그저 도망치는 선택은 아닐까 등등 수많은 불안함이 나를 찾아왔다. 일요일에 명상수업 준비를 하면서도 명치를 꽉 막고 있는 답답함과 불안 때문에 이 상태로는 수업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떻게든 내 상태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나의 에너지 상태가 수업에 오는 분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테니. 


내가 가진 책임감을 딛고 어느새 무성해진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문득 이 불안이 사실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 안에서 재생산되는 환상일 뿐이라는 자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깨달음은 이렇게 말없이 찾아온다.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소망이 환상인 것처럼, 삶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불안을 어떻게든 손에 쥐고 놓치지 않으려는 것 때문에 명치가 그렇게 답답했던 것이었다. 손을 펼치고 나니 모래알처럼 불안이 빠져나가고 복통도 가셨다. 


오랫동안 명상 수련을 이어오면서 나는 감각을 훨씬 더 예민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내 몸에 깃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위장을 아프게 하는 감정은 걱정과 불안이라지. 이런 문제를 수없이 풀었는데도 다시 마주하면 늘 새롭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 언제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게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나는 양의사들이 가득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몸의 온갖 통증에 시달렸다. 병원에 가면 알레르기를 제외하곤 늘 큰 이상은 없다고 했는데 내 증상은 약을 먹어도 좋아지지 않았다. 10년 넘게 위염약을 먹고, 알러지 때문에 면역치료를 받아도 다시 증상이 재발했다. 나의 심증은 이것들이 모두 스트레스성, 심인성이라는 것이었다. 서양의학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작년에도 이유 없는 통증과 심각한 체력 저하로 방법을 갈구하던 중 우연히 자연치유를 알게 되었고 1년 이상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 나의 몸 상태는 꽤 괜찮다. 그래서 이걸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심리적인 문제와 신체적인 질환이 너무나도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을 스스로 체험해와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꿈도 그러한 것이었고, 상담심리 석사 1학기에 있는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상과 상담, 자연치유. 이것들로 누군가를 진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상담 선생님도 이제 11년 차라고 하셨으니 나도 한 10년 즈음 뒤에는 정말로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젊고, 꼭 나이 때문이 아니라도 인간의 가능성은 늘 무한하니까. 두려움 대신 설렘을, 내 마음이 공심이기에 나는 순풍이 불어올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웃으신다. 나는 상담을 할 때마다 할머니와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정신분석 상담 선생님도 닮고 싶은 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넉넉한 마음과 사려 깊음, 인간애. 이런 것들을 세상에 잘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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