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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스원오원 Jan 29. 2021

유명해지기보다, 잊혀지지 않기를

2020년 8월 3일 방송분


안녕 클둥이들? 나는 라마라고 해. 나는 클둥이들을 한 명 한 명 잘 알지 못하는데, 클둥이들은 나를 아는 눈치더라. 내가 클원의 타운홀 미팅에 등장한 적이 있다며? CX로 문의를 해도, 인스타그램에서도, 어쩌다 마주쳐도 모든 클둥이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인사해줘서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지 뭐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해.


난 어려서부터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을 곧잘 하곤 했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으면 보통 애들은 '대통령이요!', '축구선수요!', '부자요!', '연예인이요!'처럼 뻔한 직업이나 장래희망을 말하는데, 나는 굳이 굳이 '유명한 사람이요!'라고 했대. 무엇으로 유명해질지는 정하지도 않고 이름만 날리고 싶은 말 그대로 본투비 관종이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우리들의 성장이란 게 다 그렇듯, 나도 자라면서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순수한 욕구는 조금씩 작아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은 잘하지 않게 되었어. 대신, 내가 죽어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니 잊혀지더라도 조금은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우연히 책장을 봤는데,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 절반이 이미 죽은 사람들이 쓴 책인 거야. 그때부터였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게.


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낀 건 벽이었어. '아, 글로 세상에 남으려면 엄청 글도 잘 써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글씨였어. 어느 날 서촌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왔는데, 윤동주의 글보다도 그가 원고지와 종이에 끄적인 글씨들이 더 멋진 거야. 내가 윤동주만큼 글을 잘 쓰진 못해도, 윤동주만큼 글씨를 잘 쓸 수 있지는 않을까 싶었어. 나도 글은 제법 쓰는 것 같은데, 이걸 손으로 써서 누군가한테 주면 늘 부끄럽더라고. 편지를 쓸 때가 그랬어. 내 마음을 전하는 글을 기가 막히게 썼는데, 글씨가 이상하니까 친구 연인에겐 부끄럽고 부모님에겐 죄송하더라.


글씨를 배우고 난 뒤, 내 마음을 전달하거나 표현하는 일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정말 안될 일이지만 말이야. 내 생각이나 마음이 못난 글씨 때문에 얕잡히는 건 더 속상한 일이더라. 그 뒤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어. 더 많이, 더 자주. 점점 사람들은 내 글씨로 쓰여진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마음을 달라고 했고. 그 글씨들은 내 주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주변으로 남아 널리 퍼져가기 시작했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라마캘리 태그를 달고 내 글씨를 방에 붙여놓으며 좋아하는 사진을 봤을 땐, 이젠 이 글씨는 나의 손을 떠났구나 싶더라. 적어도 그때부터,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 잊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얼마 전에, 가족 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어. 인생고기집이라는 내가 쓴 글씨로 된 간판이었어. 우리 엄마는 내가 그 간판을 쓴 줄 모르셨거든. 지나가다가 아들 글씨 같아서, 아들 글씨랑 닮아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고 하더라. '엄마, 그 글씨 아들 글씨 맞아요!' 했을 때, 엄마랑 나는 아마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아. 내가 없어도, 어디서든 나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이 세상에 벌써 남기 시작했다는, 그런 감정 비슷한 것들.


클래스101에서 수업을 처음 열 때 수업 제목을 뭘로 할지 고민이 많았어. 나도 한 달 만에 끝내는! 쉽게 시작하는!! 처럼 뭔가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내게 캘리그라피는 그런 존재가 아니더라. 글씨가 내게 준건 뭘까,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온 수업 제목은 '글씨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세요' 였어. 나의 취향으로, 나의 마음대로 세상에 보여지는 무언가를 글씨로 쓰고 남기고 남에게 전해 세상에 남기는 일. 나는 그게 캘리그라피라는 취미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유명해지진 않았지만, 최소한 내가 원하는 만큼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 같아. 그래서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나누려 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없어도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말야.


하하. 마지막으로. 내가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려준 클래스101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클원을 만나고, 어릴 적 꿈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크리에이터에게도, 수강생들에게도, 클원은 잊혀진 시절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곳이지 않을까? 다시 한번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시즌2의 시작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Oasis의 Live Forever를 들려줄게. 그럼 클래스101의 성장을 멀리서 응원하면서 이만 인사할게.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101MHz는 여기까지. 안녕!




다시 듣는 101MHz

101MHz는 매주 월, 수, 금 오후 5시, 클래스101 오피스에서 짧게 방송하는 사내 프로그램입니다. 한 명의 직원이 나와 자신이 보고 들었거나 겪었던 일 중에서 회사의 비전과 문화가 멋지게 드러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수강생의 사연, 크리에이터의 한마디, 직원의 경험 등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직원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사연들을 모아 '다시 듣는 101MHz'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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