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에튀드는 귀로만 들읍시다…1편

F.Chopin Etude Op.10

by 클래식 영업사원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연주하기 어려웠던 곡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쇼팽 에튀드를 꼽을 것이다. 나는 손이 작은 편이라(옥타브밖에 안 닿는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에튀드를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에튀드 중에는 내가 아예 범접할 수 없는 곡들도 있다. 예를 들면 옥타브 연습곡(Etude Op.25 No.10). 내가 이 곡을 연주할 가능성은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없다.

쇼팽 에튀드는 참 묘한 곡이다. 사람들마다 쉽다고 생각하는 곡들, 그리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곡들이 서로 엇갈린다. 예를 들어 나는 Op.10 No.1을 어려워한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어렵긴 하지만) 그럭저럭 쳐낸다. 그들에게 1번은 그렇게까지 ‘희대의 난곡’ 수준은 아닌 것이다. 반면 나는 Op.25 No.6을 제법 수월하게 쳤다. 그러나 훗날 알고 보니 이 곡이 어렵기로 악명 높은 곡이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쇼팽 에튀드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테크닉적 결함을 어떻게든 들춰내는(?) 신비한 연습곡 시리즈라는 것이다. 손이 빠른 사람도, 손이 느린 사람도, 또는 손이 큰 사람도, 손이 작은 사람도 각자 어려운 곡이 하나 이상은 있는, 피아노 전공생들에겐 악몽 같은 연습곡 중 하나다.

악명 높은 이유는 또 있다. 쇼팽 에튀드는 입시곡 단골손님이다. 예고와 음대 입시곡에 항상 고정으로 등장하시는 쇼팽 에튀드. 그래서일까. 입시철이 되어 연습실에 가보면 방마다 한 명씩 쇼팽 에튀드를 폭풍처럼 몰아치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쇼팽 에튀드는 작품번호에 따라서 크게 두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Op.10, 다른 하나는 Op.25이며, 이 두 개의 작품번호에 각각 12개의 연습곡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에튀드의 총개수는 24개가 된다. 오늘은 대중에게도 친숙한 곡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쇼팽 에튀드 Op.10의 12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쇼팽 에튀드 Op.10는 1833년에 출판되었고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쇼팽 에튀드 Op.10은 에튀드 Op.25보다 먼저 작곡되었다.



들어가기 앞서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쇼팽 에튀드 하나하나마다 부제가 붙어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이 부제는 후대의 사람들이 뇌피셜(?)로 지어낸 것이다. 정작 쇼팽 본인은 아무 부제도 붙인 적 없기에 나는 되도록이면 번호를 사용하려고 한다. 곡마다 부제를 같이 써두겠지만 그저 이해를 돕는 용도일 뿐, 곡의 이미지를 부제에 맞춰 너무 고착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Op.10 No.1 (‘폭포’ /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는 ‘승리’)

오른손의 장대한 아르페지오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연습곡 1번부터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데, 이 곡을 연주할 때에는 오른손, 손목 그리고 오른팔의 움직임을 신경 써야 한다. 체르니를 칠 때의 모양새로 이 곡에 도전하다가는 ‘망한다’.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손에 엄청난 무리가 갈 것이다. 이 곡을 연주할 때에는 손목과 팔꿈치를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며, 왼손의 화음 또한 하나의 멜로디로서 이어지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https://youtu.be/9E82wwNc7r8?si=uzKzJ9lOQLTtyldr



Op.10 No.2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는 ‘발레리나’)

레전드가 나타났다… 이 곡은 사람이 구현 가능한 테크닉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곡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른손의 3,4,5번만 사용해서 연주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장장 2장을 3,4,5번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가? 나도 잘 안된다. 이 곡을 잘 치기 위한 하나의 팁은, 오른손을 최대한 가볍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음 하나하나를 꼭꼭 누르기보다는, 훑는 느낌으로 ‘진행’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리가 붕 뜨거나 건반이 과하게 덜 눌리는 건 금지다. 이 곡은 손크기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어려운 곡이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손가락이 각각 독립된 상태일 때 이 곡을 배우기를 권장한다.


https://youtu.be/A3j57AdHSvg?si=7rTuxDdGaJEm8Td6



Op.10 No.3 (‘슬픔’, 한국과 일본에서 쓰이는 부제는 ‘이별의 곡’)

느리고 서정적인 연습곡이다. 이 곡은 학생들이 딱히 칠 일이 없는 연습곡이다. 경쟁력 있는 빠르고, 어려운 곡에 비해서 느리고 차분한 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자. 이 곡 또한 쇼팽 에튀드라는 것을. 이 곡은 음악적으로 치는 것이 어렵고, 그 부분에서 바로 노련한 테크닉을 요구한다. 자칫하다간 멜로디가 딱딱하고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고, 뚝뚝 끊길 수도 있다. 오른손과 왼손 각각 멜로디를 선명히 살리면서도 부산스럽게 들리지 않게 레가토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https://youtu.be/JS7KfOyMEIY?si=ZbMYhTyc6aKatI0C



Op.10 No.4 (‘급류’,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는 ‘추격’)

또 등장하신 레전드 연습곡. 한국 피아노 전공생이라면 한번 이상은 분명 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입시곡이나 실기시험, 콩쿠르 곡으로 자주 치는 곡인데, 한국 학생의 기량이 수직상승하고 있는 현재, 무대에서 괴물같이 빠르고 큰 소리로 한 번에 해치우듯 치는 학생들이 꽤나 보인다. 물론 좋은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에너지를 조절하고 , 속도보다 디테일에 더 신경을 써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https://youtu.be/XIKdCTmcTLs?si=v55pVxMVTM1MNpXe



Op.10 No.5 (‘흑건’)

이 곡 또한 유명하다. 이 곡은 부제에서도 나타나듯, 검은건반만을 사용해 연주하는 연습곡이다. (중간에 흰건반으로 치는 음이 딱 하나 껴있다고 기억한다.) 검은건반은 디자인 상 흰건반 보다 좁고 높게 위치해 있다. 즉 검은건반만으로 연주를 하기엔 상당히 위태롭다는 말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 곡의 연습 포인트이다. 이 연습곡은 위태로운 검은건반 타건을 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훈련하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연주 기량을 향상하게 한다. 이 곡에서도 무조건 빠르게 해치우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근육을 릴랙스 할 타이밍들을 정한 뒤 그 계획에 맞춰서 근육을 컨트롤하길 바란다.


https://youtu.be/gqHL2nvWs2U?si=YHwoIp1w55rJdkft



Op.10 No.6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 ‘외톨이/황야’)

이 곡은 학생들이 별로 칠 일이 없다. 이 곡도 3번과 비슷하게 음악적인 표현을 신경 써서 연습해야 하며, 왼손이 부산스럽지 않고 멜로디에 녹아들도록 연습해야 한다.


https://youtu.be/XMiSndwL97o?si=hyjf-zdXnNssHIBo



Op.10 No.7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 ‘마법사’)

나는 이 곡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아니, 미워한다. 손이 작은 나에게 이 곡은 좌절 그 자체였다. 오른손의 적절한 연주 자세, 연주 모션을 깨달으면 수월하게 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전에 저는 아예 손을 쫙쫙 벌리지 않으면 건반이 눌리지조차 않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연주 팁을 풀자면, 매 음을 건반 끝까지 꼬박꼬박 누르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오른손, 왼손 각자 멜로디가 있는데, 그 멜로디를 퇴대한 살리며 가벼이 지나가보자. 훨씬 치기 수월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리가 실없이 빠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https://youtu.be/RZWjOzBl0zU?si=x-xKFd4HLr3gO_o-



Op.10 No.8 (‘햇빛’)

오른손의 상행, 하행 아르페지오로 점철된 곡이다. 이 곡도 자칫하면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들릴 수 있다. 페달 컨트롤을 깔끔하게 해야 하며, 굉장히 멜로디컬 한 곡이기 때문에 다이내믹 또한 신경 써서 연습해야 한다. 오른손이 무겁거나 처지지 않게 힘 분배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간 부분이 어렵다는 평이 많은데, 멜로디의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손목과 팔목을 움직이면 훨씬 치기 수월해진다. 빠르게 연주하다 보면 손이 마치 위아래로 원을 그리듯 움직일 것이다.


https://youtu.be/Op1qBQRJNLM?si=Jwev3jaIIxBpCne2



Op.10 No.9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 ‘밤 여행’)

왼손의 넓은 범위가 부담스러운 곡이다. 학생들이 주로 칠일은 없는 곡이지만 왼손의 기교가 꽤 어려워서 상당한 연습을 요구하는 곡이다. 이 곡은 왼손이 저음역대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만큼, 낮음 음끼리 왕왕거리며 섞일 수 있다. 페달 처리를 깔끔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왼손의 손목 및 팔목의 움직임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멜로디의 진행방향을 따라 유연하게, 마치 파도의 밀물, 썰물처럼 움직여야 넓은 범위의 음들을 커버할 수 있다.


https://youtu.be/A0umohcLS1I?si=GPxDX1dzUA0xETmf




Op.10 No.10(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 ‘제비’)

또 나왔다. 레전드가. 우선, 이 곡은 손이 작다면 안 치는 편이 좋다.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곡이다. 이 곡은 오른손의 넓은 범위의 음들을 커버함과 동시에, 4,5번 손가락으로 멜로디를 이어가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연습곡이다. 페달 타이밍 또한 매우 애매해서, 페달 계획을 섬세하게 짜놓지 않으면 금방 지저분한 소리뭉텅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 오른손이 레가토일 때와 스타카토일 때를 분명히 구분해서 연주해야 한다.


https://youtu.be/Ry7hbUQkqPg?si=C5hM8uEZ4nUbdmwN



Op.10 No.11 (한국에서만 쓰이는 부제 ‘평온함’)

이 곡도 손이 작으면 꽤나 부담스러운 곡이다. 손이 작으면 양손의 펼침화음이 그냥 아르페지오 정도가 아니라 점프와 착지 수준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곡 역시 페달 컨트롤이 중요하며, 화음 속에서 중요한 음들을 적절히 걸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https://youtu.be/eG1Mv892-lE?si=uhU1nKb1-we3_N8c



Op.10 No.12 (‘혁명’)

왼손의 테크닉을 기르는데 좋은 곡이지만, 오른손 또한 무거운 멜로디를 담당하고 있어서 양손 모두의 수고로움을 요하는 곡이다. 우선 왼손을 위한 팁은, 흐름을 타라는 것이다. 음 하나하나를 또각또각 연주하면 그건 음악이 아니게 된다. 오른손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굉장히 벅차고 격렬한 멜로디라인과 감정선을 지니고 있다. 이를 표현하려면 마치 급류에 휩쓸리듯 다이내믹을 비롯한 디테일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고음역대는 파도가 고점을 때리듯 꽤 크게, 저음역대는 파도가 잦아들듯 잠잠하게, 등등. 유연한 흐름을 표현해야 한다.


https://youtu.be/w2vLEQno9Ks?si=1tTR0ZJ6S5odMoDE



das Meer Pick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쇼팽 에튀드 연주자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이다. 이루 말할 데 없는 테크닉과 깔끔함, 음악성… 내 생각에 폴리니는 에튀드의 교과서와도 같다. 쇼팽 에튀드를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폴리니의 연주를 들으며 그의 스타일을 익히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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