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nari (2021.05.01.토) *
보통 저녁 9시 뉴스를 노트북으로 틀어놓고 소리를 들으며 다른 일을 하다 뉴스 말미에 스포츠 뉴스가 시작되면 끄는 것이 나의 일반적인 습관인데, 가끔 뉴스 이후에 하는 프로그램까지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주 목요일에도 그랬다.
뉴스가 끝난 뒤 ‘아내의 정원’이라는 소제목으로 D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었는데, 경기도 오산에 있는 아주 멋진 정원을 소개해 주었다. K의 잔잔한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지는 정원의 모습은 정말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무엇보다도 졸린 내 눈을 크게 뜨게 했던 것은, 그 정원을 20년 동안 가꿔왔다는 A 어르신의 분위기였다.
83세라는 나이를 도저히 믿지 못할, 60세라고 해도 될 만큼 곱고 단정하고 환한 어르신의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80대가 되신 분들 중 그렇게 빛나는 분위기는 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아파서 지금은 86세이신 남편분과 함께 20년 전에 서울에서 오산으로 내려와서 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었다. 잠깐 나온 딸은, 나와 대학교 동문선배인 듯 기억에 있었다. 성악과 출신인데 지금은 연대 앞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동안 병약하여서 병원을 집처럼 다니셨던 분이 1년도 못살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왔던 곳에서 20년이 넘도록 정원을 가꾸고 퀼트작가로 활동을 하며 책을 쓰는 등 재능을 발휘하는 놀라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였다.
어제는 L선생님의 고등학교 사진을 보다가 R선생님의 사진도 같이 보게 되었다. 10년 전의 사진들이었는데 푸릇한 L선생님과 한껏 멋있는 청년이셨던 R선생님, 모두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사진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우리의 인생은, 나이들고 머리가 빠지고 어깨가 굽어지며 키도 줄어든다. 팽팽하던 피부도 축 늘어져서 더 살쪄 보이기도 하고 뼈마디가 쑤시며 주름살은 너무도 많아진다. 어리숙하던 분위기가 고급진 분위기의 성숙함으로 남아야 하는데, 또 생각처럼 그렇게 변화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선생님께서 은퇴한 사람들이 연금을 받는 연수가 평균 7~8년이라고 하면서 놀라워 하셨다. 은퇴한 이후에 연금을 받으며 조금 여유있는 삶을 누리고자 직장에 다니는 젊은 시절 내내 붓는 것이건만, 평균 7~8년을 받고 삶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지, 아, 안타까운 인생이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통 60대가 넘으면 역동적으로 하고 있던 일을 계속 하기도 힘들고, 거기에 새로운 꿈을 꾸기는 더 어려운 나이다. 물론 요즘의 60대, 70대는 예전과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요즘은 70대가 넘어서도 자의건 타의건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이번 주의 가장 큰 화두는 영화배우 Y의 오스카상(아카데미상) 수상이었다. 1947년생으로 올해 75세인 그녀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세계에 던진 크나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단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톱배우였던 그녀가 C와의 결혼 이후, 13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이혼을 하면서, 그야말로 억척스러운 생계형 배우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이 온갖 언론을 통하여 이야기되었다. 왠지 청승맞고 안쓰러운 분위기의 배우로 알았었는데 젊은 시절의 모습은 너무도 밝고 환한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수상했다는 ‘Minari’ 영화를 오늘 보면서 사실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장난꾸러기인 아들과, 연속되는 삶의 실패로 양어깨가 내려앉은 아버지 역할이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온갖 힘을 써보지만 한번도 따라주지 않는 행운(?)으로 인해 점점 더 무너져가는 가족을 바라보는, 너무도 힘들고 막막한 이국땅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민자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역시 이 배우도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었다고 한다.
그 어두운 분위기에서 활력을 주는 Y의 연기는 충분히 눈길을 끌만 하였고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는 끝내 슬프게 끝나지만 말이다.
Y가 맡았던 다른 역할들을 많이는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의 할머니보다 더 주목받을만한 역할들이 훨씬 더 많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이에 이런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녀가 혼자 헤쳐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한 그 어떤 큰 ‘칭찬’과 따뜻한 ‘격려’로 보여진다.
인생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을 생각해 본다.
Y가 결혼하지 않고 (톱)배우 생활을 계속 했다면 어땠을까..
Y가 C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Y가 이혼을 하지 않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Y가 재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Y가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Y가 생계형 배우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른 직업처럼, 60대 이후로 배우 직업을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저예산의 독립영화라는 이유로 ‘미나리’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등등..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 전체에서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그 나이에 이렇게 자유롭게 구사하는 영어 유머까지!!! 위에서 말한 그 어느 것도 ‘만약’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놀라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실패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 절대 삶을 포기하지 말 것.
나 자신이 불쌍해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그 순간 또한 지나가리니..
힘들고 괴로운 그 순간에, 한걸음 뒤에서 나의 인생을 바라보기를...
그리고,
가능하면 나이를 잊고 열심히 움직여 보기를...
그녀가 오스카상을 수상한 뒤 한 말이라고 한다.
- 인기는 식혜 위에 동동 뜨는 밥풀이야
식혜 위에 동동 뜨는 밥풀같이 인기는 하루아침에 없어지는거야..
* 영화 Minari 에 나오는 음악 중 ‘Rain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