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질 (2021.04.24.토) *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S대 합격생들 명단이 적혀진 플랭카드가 1학기 내내 학교 정문에서 바라보이는 벽에서 펄럭거렸었다. 그렇게 붙이는 것이 금지된다고 하여서 지금은 하지 않지만, 지금도 S대 수시와 정시 합격생 수가 몇 명이 되는지에 따른 고등학교 순위가 돌아다니고 있다.
개교 초반에는 특히 더 SKY 합격생의 숫자가 더 중요했었는데, 학교에서 촉망받던 학생이 S대를 들어가면 마치 인생의 큰 축복을 받은 것 마냥 모두가 축하해 주고 부러워 해주고 했었다. 물론, 아주아주 큰 축복이며 학교의 자랑이며 집안의 자랑이다, 당연히!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S대를 들어갔다고 한들, 그 기쁨과 승리의 쟁취가 인생 내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도 4년(남학생은 6년) 뒤에는 결국 졸업을 하게 되고 어딘가에 취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S대라는 것이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 아주 큰 ‘자랑’과 ‘명예’이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기대’가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짐’이 되고 때로는 ‘괴로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S대의 명성이 많이 퇴색하고 있다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학교 초반의 졸업생이었고 S대를 들어갔던 ‘자랑스러운 학생’ 이었던 A가 H자동차의 영업사원으로, 은회색 양복을 입고 자동차 카탈로그를 돌리러 학교에 왔던 날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인생의 당연한 순리를 내가 그 때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S대 합격생이었지만 그도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얼마 뒤 들은 이야기지만, 얌전하게 공부만 하던 그가 사람들에게 온갖 요구를 맞추어 주어야 하는 영업사원이 잘 안맞아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이런 것이다. 공부만 하던 머리로는 인생이 녹록하지 않고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SKY에 들어가면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고, 승리의 쟁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작년 12월31일 밤11시30분 경, 송구영신예배 반주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11시40분까지는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늦게 출발한 게으름을 탓하며 급한 마음으로 운전하던 내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이 있었다. 길거리는 코로나로 인한 상가들의 이른 폐점으로 온통 깜깜했고 아파트들도 정적에 쌓여있었는데 어느 아파트 비탈길에 세워놓은 택배 차량 뒷문을 열고 택배 상자들을 꺼내는 기사님의 모습이었다.
코너를 돌던 나는 깜짝 놀랐다. 새해를 맞이하기 30분 전인데 택배를 배달하고 계시다니.... 그 자리를 떠나면서 운전석 거울로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었다. 한참 택배 기사님들의 과로사 이야기가 나오던 때였다.
얼마 전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아파트 내 도로에서 택배 차량 출입을 금하여서 저상 택배차(높이가 낮은 택배차)만 주차장 출입이 가능하며 수레로 운반하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들었다. 결국 택배상자를 아파트 입구에 쌓아놓는 등 한참 떠들썩했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경비원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는 것을 들었다. 거의 60대~70대 어른들이신데 한참 어린 사람들이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모습들이 뉴스 영상으로도 나왔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거의 100% 인터넷 쇼핑을 하는 나로서는 택배 기사님들이 안계시면 생활이 지탱될 수가 없기에 매우 소중한 분들이다. 또한 경비원분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어던 경비원분들은 모두다 친절하시고 겸손하시고 못하는 것이 없었던 만능인들이셨다.
예전에 있었던 아파트 경비원분은 50대로 서울의 H대 경영학과를 나오신 분으로 아파트에서 유명했으며 그 이후에 오신 분은 70대이셨지만 영어도 무척 잘 하시고 아는 것이 많으신, 역시 인텔리셨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신 분이 아이들 옆에 있고 싶어서 학교 경비원을 하시는 경우도 보았다. 택배 기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대학교 안나온 사람들이 어디 있으며 회사에 안다녀 본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정년을 65세로 연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50대 정도에 퇴직을 하게 되고 새로운 다른 일을 찾게 되고 준비하게 되는 시대다. 대학교를 나와도 기업에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모두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어서, S대를 나와서도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누가 누구를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의 가족이 택배기사님이나 경비원분이 될 수도 있고, 젊은 날 화려했더라도 갑자기 다른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말일까...
* Gapjil ; the abuse of underlings and subcontractors by executives who behave like feudal lords (마치 봉건영주들처럼 행세하는 경영자들이 부하직원이나 하도급업자들을 학대하는 것)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한국의 ‘갑질’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직업이 소중하며 고귀하다. 내가 대우받고 싶다면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 그가 바로 나, 어머니 또는 아버지 일 수 있으므로!
다음 주부터 1차 지필고사다. 1학년은 2일 동안 4과목의 시험을 치룬다. 아이들이 이번 주에 이렇게 말했다.
- 공부는 안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요..
공부는 해야겠는데 공부가 잘 안되고 하기 싫어서 안하지만 그래서 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만 받는 아이들의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하다. 공부는 안되지만 신경은 쓰이는지 모습들은 꾀죄죄하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갑질’을 하기 위한 ‘자리’에 오르고자 함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언젠가는 없어질, 의미없는 ‘어설픈 잘남’을 나타내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기억에 남고 삶에 새겨질, 의미있는 삶을 위한 공부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진짜로 부자는 부자다움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진짜로 잘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 2021학년도 1학기 1차 지필고사 시간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