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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Jul 15. 2023

*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 *

*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 (2023.07.15.토) *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 (2023.07.15.) * 

       

 -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네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으니 주일날 반주는 물론이고 내가 맡은 날의 금요일 기도회나 새벽 기도회 반주도 빠질 수 없는데, 여행이나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다른 분에게 반주를 부탁할 일들이 종종 있었다. 대신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들을 했었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만한 디저트용 선물이 좋았다. 그래서 내 컴퓨터에는 <Food>라는 폴더로 다양한 디저트 선물 사이트가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선물을 고르는 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왠지 모르지만 즐겁고 기대되는 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 이걸 받고 완전 좋아하면 좋겠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명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선물을 챙겼었다. 누구의 생일날 무언가를 챙기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닌 나로서는 사회생활을 배우기 위해서 힘들게 들였던 습관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무언가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내가 챙기는 분들은 학교의 관리자가 아니었다. 가끔, 정말 고마운 마음에 무언가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관리자분들에게도 선물을 드렸었지만 아주 드물었다.      


  언젠가 명절을 앞두고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께 케이크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주변 사동과 본오동의 P 제과점을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온갖 케이크를 샀던 기억이 있다. 케이크를 선물받았던 A의 와이프를 학교 행사 때 만났었는데 그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직장 동료에게 이런 선물이 들어온 게 처음이에요….     


  언젠가는 B의 집으로 선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꿀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받았을 텐데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 B에게 물었었다.     


 - 혹시, 잘 도착했나요??

 - ..아?? 받았어요….     


  계단을 내려가던 나와 올라가던 B가 잠깐 스치면서 나누었던 저 (어이없는) 대화와 그때의 그 장면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B는 나의 선물 대상에서 삭제되었다.     


  나는 주로 다른 분들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했었다. 커피 믹스 박스나 내가 가지고 있는 영화 티켓 같은 것들…. 그리고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그 순간이 좋았다. 책은 선물하는 순간 버려지는 것이니 선물하지 말라는 출판사의 권유에 작년에 출간했던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1>도 같은 교무실 선생님 12분 이외에, 야간 관리 집사님, 사서 선생님과 실무사 선생님들에게만 드렸었다. 올해는 왜 주지 않느냐며 C집사님이 성화이시지만….     


  하지만, 이렇게 미미하게 누군가에게 무언가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선물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내가 받았던 그 선물과 관계된 것들이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감사하고 감격이지만 몇 년 전에 D가 나에게 보내주었던 커피 쿠폰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D의 누나에 이어서 같은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고 꿈은 원대했으며 특히 수학을 잘하던 똑똑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마음 잡고 공부할 형편이 되지 않았고 이리저리 보살펴 주고 싶었던 안쓰러운 녀석이었기에 늘 신경을 썼던 아이였다. 그런데 내 생일날 날아온 커피 쿠폰을 보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학생에게 커피 쿠폰을 받은 적도 없었거니와 특히 이 녀석은 그럴만한 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귀한 커피 쿠폰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고 기간을 계속 연장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D에게 물었었다.     


 - 어떻게 선생님에게 그런 쿠폰을 선물할 생각을 했어??

 - 드릴 게 없는데 무언가 드리고 싶었어요.

 - 정말 고마워.     


  누군가에게 스마트폰으로 쿠폰 선물을 주고 받을 때마다 D가 생각나는 것을 녀석은 모를 것이다. 잘살고 있는지….    

 

  아침에 나오는 라디오 방송에서 언젠가부터 커피 쿠폰을 주고 있었다. 짧은 사연을 읽으면서 커피 쿠폰을 2장씩 주고 있었는데 며칠 전 이런 사연이 나왔다.     


  - 오랜 직장생활을 했지만 사람들을 알아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네요…. 커피 쿠폰을 주시면 혼자서라도 마셔 볼게요.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저 말에 진행자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커피를 같이 마실 시간이 없을 수는 있지만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생활이라는 걸까…. 그럼 나는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나‘하고 생각해 봤다.      


 - 글쎄…. 뭐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마시고 싶은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물론 그 사람이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장의 커피 쿠폰을 주던 방송에서 요즘에는 아이스크림 쿠폰을 주고 있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커피 한잔보다 아이스크림을 혼자 먹는 게 더 나을 수 있으니까….   

   

 - 커피 마시자.     


  커피 쿠폰을 선물로 받은 그 사연자가 커피를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언젠가 E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 커피 마시는 토요일 늦은 오후….    

 

********************           


*** F선생님의 출장으로 체육 보강을 하게 되었고 체육관으로 2학년 남학생들을 데리고 갔다. 체육관에는 1학년 여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니까 아이들이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몰려와서는 온갖 수다와 장난을 했다. 얼마나 귀엽고 재미있었던지!     


  여학생들과 같이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2학년 남학생들은 나름대로 농구를 하며 보내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남학생 2명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1학년 여학생들이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추는 녀석들의 모습을 여학생들과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보다가 아이들 사진을 F선생님에게 보냈다. F선생님은 고맙다며 바닷소리를 녹음해서 보내주었고.     


  며칠 뒤 내 책상 위에는 읽지 못하는 글씨로 장식된 상자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F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이들과 수다 떨고 까부는 모습 보기만 했는데 선물이라뇨!     


  F는 그 미백 마스크의 효과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보내주었다.     


  선물은, 단지 선물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늘 깨닫는다.     


#커피  #선물  #쿠폰  #커피_쿠폰  #아이스크림_쿠폰  #출발_FM과_함께  #미백_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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