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평생 집과 동네를 떠나본 적 없던 사람에게 문득 가보고 싶은 나라가 생겼다.
그 사람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어학원에 등록해 그들의 언어를 배워본다면 꽤 괜찮은
시작이 될 것 같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먹거리나 핫 플레이스 정도는 여행 가이드북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지만 깊이 있게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한 번으로 유럽을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예술 역시 전시 한번 봤다고, 관련 서적 몇 권 읽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나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만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예술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바꿔주는, 그래서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소위 ‘전공자’에서 그 범위를 넓혀 예술을 주체적으로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인생에서 예술을 소비하고 예술 속에 살면서 촉촉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건드려 주는 일종의 ‘예술 통역사’ 이다.
단순하게 설명하기 힘든 이 일은 의무교육으로만 예술을 배운 사람들과 예술은 멀리 치워두고 자신의 일과 매일 마주하는 현실 안에서 통찰을 찾고 혜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우리 삶에 예술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각자의 방법으로 예술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경험과 전문성은 물론 그 밖의 잡지식과 없는 연기력까지 동원해 예술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최대한 쉬운 언어로 통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청담동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는 김 대표부터 벌교 갯벌에서 가리비를 캐시는 꽃분 할머니까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예술을 통역하겠다.” 고 말하곤 한다.
유혹자(박기열 作) _ 조합토. 테라시즐라타. 2001
‘내 마음이 널 때리길 바라. 너도 원하면 나를 결혼해 ’
번역기로 돌린 것 같은 이런 허접한 사랑고백으로는 진심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없다.
예술을 통역하는 것도 단순히 뜻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온전히 마음으로 이해해 결국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러려면 교육대상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 필수이므로 내게도 강의를 듣는 대상에 따라 늘 그들의 입장으로 빙의되어 통역을 할 수 있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 마지막 솔루션으로 자기의 방식대로 예술을 소비해 볼 것을 추천한다.
예술과 대화를 할 때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다.
우선 내 주변을 예술이 감도는 분위기로 만들어 무겁지 않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래서 전시를 구경하거나 지루한 음악을 듣는 것이 조금 익숙해졌다면 그다음은 맘에 드는 예술작품을 직접 구입하거나 클래식 공연장을 찾아 공간이 주는 감동을 느껴보는 등 어떤 식으로든 자의에 의해 예술을 소비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주 비싸거나 수준 높은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이 수억 원짜리 페라리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시작은 캐주얼할수록 좋다.
집안에 미대 다니는 조카가 있어 졸업전시회에서 작품을 산 적이 있다던가 평소 트로트를 좋아하지만 고객사 임원 가족의 피아노 독주회에 인사치레로 갔다가 졸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시작을 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한 첫걸음이다. 그런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예술을 곁에 둘 수 있는 예술 입문과정의 첫 단계를 살짝 공개할 터이니 귀를 세우고 가까이 모여주기 바란다.
우선 집안이나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자신의 머그컵을 찾아보자.
콩 다방이나 별 다방 같은 커피 브랜드의 컵이거나 공장에서 찍어 낸, 어디서 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야말로 아무거나 일 가능성이 크다.
인사동이나 미술관에 있는 공예 숍에 가면 도예가들이 직접 손으로 빚어낸 각양각색의 머그컵들을 단돈 2~3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컵에 하루 종일 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면서 입술에 닿는 촉감과 손잡이의 그립감, 컵의 무게를 미세하게 느껴보며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늘 그렇게 해왔던 사람처럼 내 취향을 저격하는 새로운 디자인의 컵이 나오진 않았는지 주말마다 연인이나 가족들을 대동하고 갤러리를 방문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예술품을 찾아다니는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티켓 한 장에 수 십 만원씩 하는 세계적인 연주자의 공연을 보는 것도 황홀한 경험이겠지만 그보다 더 다양하고 부담 없이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기업이나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아트홀들이 많은데 그곳의 공연장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있다.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했지만 가능성으로 충만한 젊은 피아니스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고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귀국보고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비롯한 각종 장르의 공연들이 월별, 년별로 빼곡히 계획되어 있는데 원숙하진 않지만 언젠가 세계무대에 이름을 떨칠 젊은 아티스트들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고 더군다나 이 또한 2~3 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문화생활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대중가수들도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예술가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지켜내려고 하는 예술의 순수한 본질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비실용적이어서 대중의 입맛에 맞는 평균의 언어로 정제할 수 없지만 깊은 성찰과 자신만의 표현을 위한 고민의 흔적들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찾아내 스스로의 삶에 적용하고 나만의 언어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남녀 간에도, 부부 간에도, 세대 간에도 통역은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으로 조금씩 예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지금부터는 새롭게 탑재한 당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일과 사람, 주변을 서서히 물들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