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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pr 28. 2019

상상이 주는 선물

상상이 주는 선물     

 

2000년 대 초반 미국에서 느닷없이 SF(공상과학) 소설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것도 19세기에 출간된 소설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사실 공상과학 소설은 말 그대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당장은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있을 법한 미래의 이야기들을 창작한 것이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럴듯하게 꾸며내 따분한 현실에 식상한 사람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재미를 위한 장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많은 장르 중에 과학을 소재로 공상을 했던 이유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덕에 그 어떤 분야보다 급진적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던 분야가 바로 과학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새롭게 정립되고 증명되는 기술부터 그 기술을 기반으로 먼 미래에 대한 가설까지 예측해볼 수 있을 만큼 소재가 다양했고 그만큼 문학적 상상을 가능케 한 소스들도 풍부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역시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말 그대로 공허한 상상일 뿐이라는 이유로 공상과학 소설은 주류 문학에 안착하지 못하고 늘 3류 취급을 받았었다. 당시에는 말이다. 

그런 3류 소설들을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왜 재평가하려고 했을까?     

쥘 베른 / 해저 2만리


이런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선 한 사람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는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이다.

 우리에게는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알려진 ‘기구를 타고 5주일’을 쓴 작가이자 일생동안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해저 2만 리’ ‘15 소년 표류기’ 등 세계여행과 해저탐험, 북극은 물론 달나라 여행까지 소설의 소재로 삼으며 이야기를 창작했던 눈부신 상상력의 소유자였고 평생 64편이라는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을 만큼 자신의 상상을 글로 옮기는데 모든 걸 소비했던 성실함 그 자체인 문학가이기도 하다.

 쥘 베른은 그의 소설을 통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과학을 상상해 이야기로 쏟아냈는데 예를 들어 원자력 잠수함을 이용한 해저 여행, 로켓 형태의 우주선을 타고 가는 달나라 여행 등을 상상했다. 

 그의 상상은 마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예리한 관찰과 통찰에 입각해 사실성을 반영한 구조의 예측이었다. 심지어 알루미늄이라는 금속성 물질의 존재가 확인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에 그래서 어떤 활용도 하지 못하던 재료를 가벼운 금속이라는 밝혀진 사실 하나만으로 소설 속 잠수함을 만드는 재료로 등장시킬 정도였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모험소설을 썼던 1800년대 당시는 과학이 철학에서 막 분리가 되면서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독자적인 용어를 갖게 된 시대였을 뿐인데 소설 속에 등장한 그의 공상들이 다음 세기에 대부분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연극, 영화, 동화 등으로 수없이 각색되어 전 세계의 과학, 문화,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의 소설을 보고 미래를 꿈꾸었던 한 소년은 세계 최초로 로켓을 개발한 과학자가 됐으며 1954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은 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이름을 그대로 옮겨 와 '노틸러스'라고 지어졌다. 

 한 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더 이상 허무맹랑한 3류 소설가가 아니라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또 미래의 과학을 정확히 예측한 예언자로 인정받고 있다. 

 과학지식에 기반을 두고 기술변화를 추측하고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미래사회를 그린 쥘 베른의 소설은 상상에 근거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예리한 관찰에 입각해 정확히 미래를 예측했기에 혁신적인 비전 수립의 상징적 사례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또한 쥘 베른이 비록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사회를 그려낼 수 있었던 비결도 앞서 언급한 예리한 관찰력과 사실에 근거를 둔 상상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쥘 베른처럼 미래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집중력 있는 관찰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상상력의 대가인 쥘 베른도 19세기 당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고 듣고 추측해 낸 세상은 남들과 전혀 달랐다.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에서 그는 자기만의 관찰력과 지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어냈고 덕분에 그가 그려낸 미래는 남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혁신적인 지점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상상을 100년이 지난 후에 단순한 공상과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정확한 예측으로 재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어떤 아이디어를 배제하거나 현실을 벗어난 망상이라며 코웃음 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1975년 마이크로 소프트를 설립하면서 빌 게이츠가 ‘모든 가정의 모든 책상에 pc 한 대를.’이라는 비전을 세웠을 때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 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그 pc를 이용해 계좌이체도 하고 쇼핑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쥘 베른이 했던 상상이 커다란 선물이 되어 현재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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