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만 3년..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11년 차 직장인이자, 육아휴직 중 둘째를 임신하면서 예정에 없던 장기 육아휴직을 3년째 하고 있다. 육아도 휴직도 처음인지라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건 복직을 준비하던 중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육아와 살림이 체질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 너무나도 서투르고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존감이 한껏 낮아진 상태라 복직은 복직대로 두려웠지만 그래도 드디어 집 탈출이다!! 를 외쳤었는데.. 이 짓을 또 하라고? 뭐? 아이가 둘??? 내가?? 이런! 나 어떡하지.
입사 초 신입사원 때만 하더라도 육아휴직을 1년 이상 쓰는 분은 거의 없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는 사이 회사의 조직문화가 변하면서 남성의 육아휴직과 더불어 최대 2년의 휴직제도가 생겼다. 워낙 여성 비율이 높아서인지 제법 2년을 휴직하고 돌아오는 분들도 있었다.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으나 체감 상 80%는 1년 이내, 20% 정도 2년 육아휴직을 하는 듯했다. 내부 경쟁이 치열한 영업부서에서는 3개월 만에 복귀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영업부서에서 근무했으나 1년에서 1년 반 정도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업무에 지쳐있었고 설마 경력이 단절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도 깔려있었다. 막상 육아를 시작하고는 여러 이유로 2년을 다 쓰고 복직하겠거니 했는데.. 1타 2피. 애를 한번에 둘이나 낳고 돌아가게 되는 장기 of the 장기 육아휴직자가 될 줄이야. 인사팀 출신의 직장 선배와 다른 회사 지인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단다. 회사에는 언제, 어떻게 알려야 할지, 육아휴직수당은 어떻게 되는 건지, 과연 복귀는 할 수 있을지 등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임신을 알게 된 건 9월 초였다. 육아휴직이 6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가만있자.. 육아휴직이 끝나는 건 2월 중순, 둘째 출산 예정일은 4월 말.. 둘째 출산 전 휴가랑 겹쳐서 애매하겠는데.. 3개월 정도 일찍 복직해서 근무하고 첫째 육아휴직 잔여 수당을 다 챙긴 후 다시 둘째를 출산하러 갈까..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직장 선배 딱 한 명에게 사실을 알리고 의견을 구하니 '너 잘 생각해. 3개월 일하고 다시 들어가면 진짜 x욕 먹어. 안 나오느니만 못해'라며 뼈를 때린다. 다시 돌아갈 회사라면 어중간하게 하지 말라는 얘기였고 공감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의견을 물어봤으면 나 역시 그리 말했을 듯하다.
회사에는 언제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지금 바로 얘기하기보단 연말 연초 인사 시즌이 있기 전, 인사팀에서 슬슬 사내 재배치를 생각할 때 얘기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11월 초에 소식을 전했다. 굉장히 당황한 눈치였으나 역시 인사팀인가. 빠르게 임신을 축하해주었고 그 후 절차를 논의했다. 첫째 육아휴직 종료 후 연이어 둘째 출산 전 휴가로 변경하는 것, 그 사이에 비는 날은 나의 잔여 연차로 소진하게 되었다.
육아휴직 급여 중 25%는 직장 복귀 6개월 후 합산하여 일시불로 지급되는데 둘째 육아휴직을 연이어하게 될 시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하는 고용보험에 직접 전화로 문의하니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둘째의 출산 전후 휴가 90일이 근속으로 포함된다고 한다. 즉, 육아휴직 최종 종료 후 복귀 6개월 뒤가 아닌 3개월 뒤에 잔여 급여가 지급된다. 복귀 3개월 후 첫째의 잔여 급여를 신청하고, 또 3개월 후에는 둘째의 잔여 급여를 신청하면 된다는 결론이다.
과연 복귀는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하다. 2년도 불안한데 3년, 어쩌면 4년이라니. 나는 여전히 아이를 맡길 곳을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설마 셋째가 또 나오리라는 건 절대! 네버!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이는 사랑스러웠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 맞는 건가 싶을 만큼 집에 있는 게 정말 지긋지긋했다. 선물 같은 아이가 태어났고 비바람을 피하게 해 줄 집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휴직을 하고 오롯이 아이를 볼 수 있는 이 상황,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 라며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어쩌랴. 난 집에 있는 게 싫었다. 원체 집돌이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었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만 마음이 풀리곤 했었다.
출산 후 첫째 신생아 시절 난 그렇게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창문 밖을 바라봤다. '이제 내 자유는 끝났어.. 난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할 거야'라며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하염없이 울곤 했다. 그렇게 내 생각만 하다가도 누워있는 아이를 보면 모성애도 없고 자격 없는 엄마라며 자책까지 했으니 누가 봐도 쟤 왜 저러나 싶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 둘째는 절대 없어!라고 외쳤지만 내심 복직 후 정상? 적인 생활을 하다가 둘째를 고민하겠거니 했다. 그런 고민을 할 새도 없이 둘째 임신이라니.. 첫째 육아를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하며 난 잘할 수 있어! 를 외치기엔 그 기간이 너무 촉박했고 나에겐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 탈출구는 집 밖도,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절실히 깨달은 지난 1년이었다. 둘째 임신기간 뭘 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 남매 선배 맘이자 이제 막 따끈따끈한 신상 책을 출간한 스텔라 님의 한마디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내가 다시 아이를 임신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글을 쓰겠어요. 혼자만의 글이 아닌 세상에 내보이는 글을요' 아이를 넷이나 낳았고 20년 넘게 다이어리를 쓰며 돌고 돌아 작가의 길을 택한 그녀였다. 그렇게 나는 뱃속의 둘째와 함께 태교랍시고 하루에 하나씩 글을 써 내려갔다. '태교랍시고'이다. 왜냐면 이건 아이가 아니라 전적으로 나를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태교 글쓰기는 출산 전날에도, 당일에도 이어졌다.
첫째 때 했던 태교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베이킹이라든지, 오가닉 인형 만들기라든지, 흔한 클래식 듣기나 태담도 별로 하지 못했다. 외부로만 향했던 나의 시선을 내부로 돌렸다. 그저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유일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인 새벽에 일어나는 것과 경쾌한 타자음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가끔 글이 잘 풀리면 환호했고 아이는 발길질로 화답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저 뭐라도 쓰자는 생각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내 얘기가 아니면 써지지가 않았다.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손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집 밖이 아닌 집 안에서 (물론 가끔 카페에서),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여러 모습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이갈이, 게으른 완벽주의자, 착한 콤플렉스 등 어두운 모습도 있었고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 다니던 열정적인 모습도 있었다.
첫째가 아닌 둘째이기에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진 걸까. 육아휴직에도 연차가 쌓여 진급을 한 걸까. 그 흔한 말, 사실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본다. 더는 나 자신을 옥죄이고 질책하고 싶지 않았다. 첫째 육아를 하며 가장 나를 괴롭게 했던 '내가 싫어하던 내 모습만 보는 것'을 그만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글을 쓰면서 나를 만나고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던 창살은 나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하나씩 조심스럽게 창살을 빼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