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따.
새해를 맞이하며 다짐을 세운 사람들은 많다. "올해는 운동을 하루 30분씩이라도 한다!”는 다짐도 있고, "아, 진짜 이번엔 통장 무게 좀 늘려야지” 같은 현실적인 목표에 더하여 작년 초에 나처럼 이러코롬 창대한 목표도 있었다. 우리 집 싸모님 왈 “올해가 가기 전에 몸무게 앞 숫자를 7자로 만들면 천만 원을 주겠다.”해서 ‘그래,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하고선 운동 + 식이요법을 병행했으나 한 해가 다 지나간 얼마 전, 그동안 익히 써먹었던 어구를 소환, 재사용함으로써 나의 힘든 시도는 임무 완수를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디!...’
그러다가 어느 일요일. 그날따라 목사님 말씀이 귀에 술술 들어와 앉는 게 아닌가? 예수가 어떠하고 베드로가 어떻고 하다가 갑자기 하시는 말씀. ‘성도 여러분 올 한 해는 이 말을 지켜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빠! 삐! 따!”’
아니 느닷없이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라는 줄임말을 쓰시다니? 하나씩 풀어주시는데 신도들이 빵 터진다. 내용인즉슨 “빠지지 말자! 삐지지 말자! 따지지 말자!”란다.
우리 교회 신도들의 연령대가 다소 높아진 가운데 퇴직자도 많아지고 다른 분들과의 교류도 사회생활을 할 때와는 여러 가지로 달라지는지라 기존의 생활 방식이 들어맞지 않을 수가 있는바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단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은 바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싶었다.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을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나 어디 갈 데 없는 내 문제, 내 성격에 대한 족집게 처방 아닌가? 하여 이번 기회에 생각을 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빠지지 말자’부터 보자.
운동을 빠지지 말자는 뜻일까? 아니면 중요한 회의를 빠지지 말라는 뜻? 그런데 내가 진짜 자주 빠지는 건 따로 있다. 사귐의 영역이 넓지 않다 보니 내가 참여하거나 할 수 있는 분야, 모임은 몇 개로 한정되어 있었다. 집사(장로) 모임, 취미를 같이 하는 교직원 모임, 오케스트라, 아이들 자모를 하면서 형성된 친목 모임, 그리고 객지에 살고 있는 고교 동기 모임... 세월이 지나면서 퇴직을 한 지금으로선 각종 모임이 점차 횟수가 적어지고 있고 아이들로 인해 어울렸던 모임은 이제 거의 카톡만 주고받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가운데 작년에 내 속을 상하게 하여 일 년 내 한 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던 게 동기 모임인바 올해는 목사님 말씀도 들어줄 겸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침 며칠 전 동기 녀석 빙부 조문을 핑계 삼아 얼굴을 들이밀 기회도 자연스럽게 열었으니 내 사회생활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러주는 곳, 만들어야 할 자리는 가능하면 ‘빠지지 말자.’
두 번째 항목,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면서 얇디얇은 감정선, ‘삐지지 말자’.
어렸을 때는 화난 티를 내면 귀엽게 봐주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니, 삐져도 아무도 알아주질 않는다.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분이 상하게 되면 그냥 얼굴을 보지 않으면 되고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면 되는 관계로 그 사람은 나의 변화에 대해서 알 수가 없는바 이는 순전히 나 혼자만의 감정 손실이다.
내가 가진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우리 집안에서의 문제가 더 크고 더 오래간다. 특히 우리 집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분과는 매일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양반 또한 자기 머리를 도무지 깎지 못하는 중(僧)이다. 사소한 일, 단어 사용, 억양에 따른 의미 차이 등을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니 그냥 내가 다짐하는 걸로 살아가기로 해 본다.
마지막 항목인 ‘따지지 말자’
평소 나는 굉장히 논리적(?)이다. 물론 울집 살림하시는 분은 인정을 많이 하지 않는 부분으로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TV를 시청할 때도 하다못해 귀에 들리는 노랫말 가사도 지적을 하고 (내용상, 발음상, 이치상으로 매끄럽지 못한 부분) 심하게는 안내판의 내용까지 도입, 전개를 따져가며 언성을 높인다. 운전을 하면서도 속도가 느리거나 깜빡이를 넣지 않고 방향 전환을 한다거나 운전자가 딴짓을 하거나 (담배. 손전화 사용 등) 좌우를 넘나드는 운전을 하는 모양을 보면 고급진 내 입에서 저급한 용어가 난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인간관계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울 집 살림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논리를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그래서 올해는 다짐한다. “따질 시간에 칭찬을 하자.”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 상대방이 나를 언짢게 하면 그냥 넘기고 기분 좋게 해 줬을 때는 바로바로 칭찬을 하자.
결론인즉슨 올해의 다짐은 ‘빠지지 말자, 삐지지 말자, 따지지 말자’지만, 사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더 가볍고 유연하게 살자는 뜻이 되겠다. 모임 자리도, 인간관계도 가능하면 얼굴을 보이고 작은 일에 삐져서 분위기를 망치지 말며, 쓸데없는 논리 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가끔은 생각하자. 빠지지 않고, 삐지지 않고, 따지지 않는 삶이 결국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라는 걸.
중요한 건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그러니 올해는 자주 이렇게 외치자.
"빠지지 말자, 삐지지 말자, 따지지 말자!”
그리고 조금 부족하면 어때? 내년이 또 있는데!
빠! 삐! 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