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대처하는 자세

느슨하게

by 보나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계속 일하는 엄마였으니 휴직한 올해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는 방학을 맞이해 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전업 엄마들은 어떻게 방학을 버텨낸 것일까?




작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겨울 방학 때가 생각난다. 워킹맘은 아이들을 돌봄 교실에 보냈다가 그곳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은 후 오후 학원까지 보내는 게 당연했다. 방학 동안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니 학교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었다. 그 당시 나는 오전 1시간 30분 정도는 돌봄을 보내고 오후 학원 가기 전까지 4시간가량을 학교 앞의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 마침 그 태권도 학원에서는 '방학특강'이라는 명목으로 적당한 놀이와 줄넘기 같은 운동 시간표를 짜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프로그램에는 점심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학이니 줄넘기도 배우고 운동도 할 겸 방학특강을 신청했다. 점심식사도 주고 이어지는 영어학원에 갈 시간에 맞춰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역시 요즘의 태권도는 보육까지 다 해주는 만능 태권도라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구나' 생각했다. '워킹맘도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되는 거구나'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는 그 당시의 기억이 우울하고 슬펐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물어봤더니, 그때 1학년 아이는 자기 혼자 뿐이었는데 2, 3학년 언니들도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구석에서 혼자서 놀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같이 놀라고 해도 언니들은 자기들끼리만 놀았다고. 그 당시 아이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겨울방학이 꽤 길어서 거의 6주 정도를 그 학원에 다녔었는데 긴긴 시간 동안 아이가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냥 안전하게 하루 종일 학교 돌봄 교실에만 있게 할 걸 후회스러웠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니, 방학 때 함께 할 수 없으니 뭐라도 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욕심도 있었다. 요즘에는 돌봄 교실에만 있게 하는 선택이 최선인가 싶다.




과거에 아팠던 기억은 접어두고, 이제는 휴직맘이 되어 아이와 온전히 방학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첫 방학은 어떨까? 꽁냥꽁냥 재밌게 놀기도 하고, 밥도 해 먹고, 부족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작 방학 시작 3일 차가 되었는데 정말 힘들다.

초등학생의 방학은, 적어도 오전부터 학원 가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어야 한다.

점심도 매일매일 차려 주어야 하고 숙제도 직접 챙기며 남는 시간에 뭐 하고 놀지도 생각해야 한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과학실험 키트는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고, 방학의 초반은 아이의 자기 주도 습관을 잡는다고 하다가 지나가고 있다. 새로 오픈한 도서관에도 가서 책과 친해지는 활동도 좀 했다. 이럴 줄 알고 일부러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지는 않았다. 여름방학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이라 짧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놀게 둬보자 생각했다. 정말 잘 생각했다.


붙어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힘이 드는데 계획을 세세하게 세웠으면 이미 나가떨어졌을 거 같다. 그리고 그건 아이의 계획이 아닌 엄마의 계획이니 더더욱 아이도, 엄마도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방학이라고 해서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마음을 무겁게 가지진 않았으면 한다. 요즘에는 방학 때 다음 학기 예습은 미리 해야 한다거나, 연산도 선행학습을 꼭 해야 하고 이 시기에 하지 않으면 놓칠 것처럼 말하는 영상들도 많다. 이런 걸 보면서 내 아이도 무조건 시켜야지 하며 다짐하는 건 엄마의 욕심이다. 내 아이를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방학에 대처하는 자세는 내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행복한 걸 해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래야 엄마인 나도 덜 힘들고 행복할 수 있다. 진짜 그게 다인 것 같다. 느슨한 방학이 되게 하자.


조금 모자란 상태가 가장 좋다. 조금 배가 고파야 한다. 그런 사람의 눈빛은 살아 있고, 시간을 소중하게 쓴다.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몰입하며 무언가를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반면 풍족한 사람에게는 간절함이 없다. 그런 사람은 눈빛이 느슨하다. 시간이 남아돈다. 그저 있는 자리에 머물며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지 않는다.
- 고명환, <고전이 답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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