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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pr 12. 2022

그럴 사람이었으면 벌써 그랬을 거다

태종, 이방원, 양녕, 기질, 품성, 성격, 비인간화, 상실

태종 이방원 26화, 태종이 세자를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자가 시강 시간에 땡땡이를 치려다 걸렸다. 태종이 내관에게 태형을 가한 후 태종이 양녕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 태종 : 잘 보았느냐?
· 양녕 : 예, 이제 정말 열심히 하겠사옵니다.
· 태종 : (시선을 돌리며, 기대하지 않는 듯이) 그럴 사람이었으면 벌써 열심히 했을 것이다.
· 양녕 : (계면쩍은 듯) 아바마마...
· 태종 : (세자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아무래도 세자 네가 몸소 학문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할 것 같구나.
· 양녕 : (이해를 못 하며, 반문하듯) 예?


군왕이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해 그리한다 하지만, 이게 나이 어린 아들에게 할 짓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인지 옆집 아저씨인지...




조직에서 업무 역량이 보통 수준 이하인 사람들이 한결 같이 쓰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력하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을 믿는 사람 별로 없다. 상사는 더욱 안 믿는다. 주변 동료들도 입으로만 그러는 거 다 안다.  처리를 하려면 생각을 하고 궁리를 해야 하는데 대체로 그게 잘 안 되는 부류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 정답만 찾아내려는 습성이 참신한 해결책을 내놓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진부하다. 생각하는 힘이 달려서 그렇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이와 다르다.


    "이번 달 진도율 85%에 다음 주 수요일이면 목표를 달성하고 최종 10% 초과 달성 예정입니다."

    "그 문제는 ○○ 팀과 원인을 파악하여 협의를 끝냈고 차주 월요일 오전부터 정상 가동을 목표로

     설비 교체 작업 중입니다."

     "A사 구매 팀의 의사 결정이 늦어지고 있어서, 어제 오후 그쪽 팀장과 협의하여 내일 오전 11시까지

     발주 물량을 확정하기로 했습니다. 긴급 발주에 대비해 물류 팀에 배송 차량을 120% 확보했습니다."  




조직에는 일 잘하는 사람과 일 잘 못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구된다. 그리고 그 중간에 많은 사람이 일반적인 범주, 그저 평균의 다수에 속한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경우의 수가 적을 뿐이다.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인자와 변수가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이 어느 조직에든 존재한다. 평가라는 장치가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게 한다.사람을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기면 안 되는데, 세상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는 항상 순위를 매긴다.


역사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 모순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을 밟았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해 도전하는 DNA가 내재되어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을 확보하는 것, 역사의 발전과 사회 진보의 원동력이다. 이 힘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 평가다. 긍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반드시 그만큼의 부정적인 영향도 있는 게 자연의 순리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인간의 비인간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닌다.


600백 년 전의 사건을 다룬 역사 드라마의 한 장면이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들춰낸다. 회사라는 조직에서나 통할법한 비인간화의 철학을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한다. 숫자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평가하는 일이, 그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뿐이다.


- 드라마 태종 이방원 26화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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