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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pr 23. 2022

칼국수 예찬

칼국수, 시장, 추억, 외할머니, 입맛, 밀가루, 국물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아마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때의 기억 같다.




외할머니가 끓여준 칼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걸쭉한 국물, 짭조름한 면발이 기억난다. 팥 칼국수를 먹은 적도 있다. 그때부터 면을 좋아하게 됐나 보다.


할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밀대로 반죽을 밀었다. 얇게 퍼진 반죽을 돌돌 말아 도마 위에 올리고 칼로 쓱쓱 썰어서 면발을 만들었다. 고명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밀가루 면만으로도 맛있었다. 어릴 때 할머니와는 앞뒤 집에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손맛을 누릴 수 있었다. 가끔은 수제비도 만들어준 것 같다.


지금 내가 자주 먹는 칼국수는 모두 부평시장에서 판다. 하나는 명동칼국수요, 하나는 시장 칼국수다. 명동칼국수는 마늘맛이 진한 김치가 먹고 싶을 때 간다. 야채, 소고기, 닭 칼국수가 있는데, 그중 야채 칼국수를 사리 한 개 추가해서 먹는다. 면발 굵기는 안동국시보다 약간 굵고 일반 칼국수보다는 비교적 얇다. 육수는 걸쭉하지 않은데 탁하다. 아마 멸치 다시가 아니고 사골이나 닭고기 육수 그런가 보다.


명동칼국수는 맛있다. 그런데 시장 칼국수가 더 맛이 난다. 일단 맑은 국물이 마음에 든다. 명동칼국수 육수보다 깔끔하다. 면을 다 먹고 국물을 마실 때 속에 부담이 없다. 별거 들어간 것도 없다. 고명이라고는 김가루 하고 파가 전부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전에 위대(胃大)할 때는 만두 1인분에 칼국수를 먹었는데 요즘은 위대하지 못해서 그런가 칼국수 한 그릇만으로도 배부르다. 김치는 직접 담근 걸 내주는데 이 또한 맛있다. 사장님이 전라도 분인데 요리 솜씨가 좋다.  요즘은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아 여기서 김치, 총각무 김치, 생채, 물김치 등도 사다 먹는다.




명동칼국수나 시장 칼국수의 공통점은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가끔 가는 가좌동 시장의 칼국수하고 '남촌'의 바지락 칼국수는 밀가루 냄새가 난다. 어릴 때와 젊은 시절에는 밀가루 냄새가 좋았다.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었지만, 이제는  밀가루 냄새 조금부담된다.


부평시장에는 유명한 칼국수 집이 세 군데 있다. 한 군데는 홍○○ 칼국수인데 여기는 절대로 안 간다. 장사의 기본이 안 된 곳이다. 손님 순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몇 번을 겪고 나서는 안 간다. 다른 한 군데는 원조○○○ 칼국수, 밀가루 냄새가 심하다. 이걸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은가 보다. 이 집은 레시피가 일정하지 않아 안 간 지 오래됐다. 이 두 군데는 여전히 손님이 많은 듯하다. 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영업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칼국수를 먹는 것도 좋다. 탄수화물 덩어리라 밀가루 음식을 끊으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끊기가 쉽지 않다. 몇 천 원짜리 한 그릇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많다. 먼저 칼국수를 만들어 파는 주인들의 표정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괜찮지 않은 사람이 는 것처럼 음식을 하는 사람 치고 못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먹어서 좋고, 만나서 좋다.


칼국수는 추억이다. 이제는 만날 수도 없고, 어쩌다 앨범을 열어야 기억할 수 있는 분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시장 칼국수 집에 오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드신 어른들이다. 쌈짓돈 꺼내서 계산하는 그런 분이 많다. 사람 사는 세상에 잠시 머문 느낌이다. 각박한 시절에 사람 냄새나는 곳이 시장 칼국수 집이다. 


아사리판을 피해 시장에서 잠시 쉬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 부평시장 칼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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