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없다.
편안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가령 연인끼리는 애칭뿐 아니라 애교가 들어간다. 애교라고 하니 조금 단어가 적당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약간 애기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말투로 서로 말한다.
"댜기야, 빠빠 머거떠요?"
혀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이것 저것 떼를 쓰고 자꾸 징징 거리게 된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하지 않을 그런 유치하고 손발 오그라드는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고, 둘 만 아는 둘만의 기호 같은 것도 만들어낸다. 마치 세상에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편안해지고,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둘 만의 세상의 룰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건 친한 친구사이에도 그렇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도 친밀도에 따라서 어린 아이처럼 놀 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우리가 세상의 잣대 속에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행동들. 오히려 그 모습들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혼자만의 법칙을 정해서 놀기도 하고 당연히 가족들에게 어리광도 부리게 된다. 아이 특유의 웃음이 있고, 좋다 싫다 표현도 적극적이다. 재밌는 일이 많아지고 호기심으로 가득해진다.
지금 나이가 몇 인지 몰라도, 그 시절의 나의 생각과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물론 그땐 철이 없었지, 하지만
그 생각은 10대 때도 하고 20대 때도 했다.
그러니 어느 시점의 나이가 오면,
생각보다는 겉모습만 자꾸 나이가 드는 것 같다.
생각은 나이가 든 것 같지 않은 데 나는 그냥 나 그대로 있는 것 같은 데 ...
주변에서
몇 살이에요?
하고 물어온다든지, 내 밑으로 어린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간다든지, 어느 장소에 가면 내가 제일 어른이라든지, 아무튼 그런 상대적인 세상의 변화가 날 어른인 척, 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어린것 같은 데 말이다.
물론 때때로 그 나이로 안 보이네요. 하는 이야기도 듣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어리시네요. 는 욕이 된다.
우리는 한 번도 어른이 되어본 적이 없다.
단지 어른인 척, 해야 하는 우리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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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본연의 자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모습을 자꾸 보이고픈 누군가가 생겼다면 정말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