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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l 12. 2018

뻥이야

2018.07.12


생각해보면 어릴 때 기억은 어딘가 찢긴 공책 같아서 매번 똑같은 에피소드만 쓰는 것 같다. 추억은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아첨꾼이라  맥락 없는 이야기들을 쓸어 모아 결국 진짜도 가짜도 아닌 일기를 쓰게 된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가짜 일기를 종종 썼다.

일기에는 만난 적도 없는 남자가 나온다던지 해 본 적도 없는 사랑이 등장하곤 했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날 걱정하거나 함께 속상해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는 데, 정말 저 글을 믿는 건가? 왜 진짜냐고 묻지 않고 그냥 믿는 거지? 이런 생각을 했다.


한 번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마치 그곳에서 어떤 로맨스라도 있냥 이야기를 꾸며 쓰게 되었는 데, 그 일로 당시 만나던 사람이 화를 냈던 거 같다. 이런 나의 이상한 짓은 이유도 없이 계속되었는 데 점점 나도 날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락실에서 강박적으로 남이 흘린 백원짜리를 찾아내는 것처럼 묘한 재미에 빠진 것이다. 오해가 지겨워진 나는 결국 그런 이야기들을 모으고 모아 대충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이라고 붙여 놓으니 사람들은 안심하며 나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나의 사실을 담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며 날 의심하곤 했다. 살아오면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하고는 했는 데 평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니 대부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면 어딘가 진지해 보이는 감이 있어 보이나 본데 어린 시절 나는 남자 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폰팅을 하기도 했고(물론 걸렸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놓고 몰래 시골에 내려가 있은 적도 있으며(친구들은 집 앞에서 한참 내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아파트 초인종을 몰래 누르고 도망간 적도 있다. 엄청 좋아하는 남자에게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 별로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닥 즐겁지 않은 섹스에 좋다고 대답한 적도 있으며 텅빈 통장에 쩔쩔매는 순간에도 내가 알아서 해결한다고 걱정 말라고 한 적도 있다.


어딘가 뒤죽박죽으로 살아온 나는 거짓과 진실 사이를 정처없이 떠도는 인간이지만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인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어딘가 비밀스럽고 비밀이 많은 사람은 글을 쓰는 것 같다.


결국 내가 살아내며 했던 말들이나 기억하는 것들은 한 장면들이고 그것들은 이어 붙여진 하나의 픽션이다. 그런 혼란한 기운 속에서 불 꺼진 옥상을 혼자 빙빙 돈다.

 매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오늘 하루를 글로 마무리한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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