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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09. 2018

소비

2018.09.09

집에 잡동사니가 많다.

(도대체 볼펜이 왜 한 박스 이상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잔잔바리 물욕이 없는 편이다.

어제 명주 프리마켓에 갔는 데 뭔가를 사고 싶어 몇 바퀴를 돌아봐도 사고 싶은 게 없었다.

반면 거기서 우연히 만난 지인분들은 작은 도라에몽 인형을 사거나, 계절 지난 꽃바지를 사거나, 엄마 생각에 손가방을 사는 등 아무튼 다양한 구매로 두 손을 채웠다.


쫀쫀하고 달지 않은 수제 쿠키라도 있으면 구매해서 주변에 선물할까 했는 데, 최근 무슨 머랭 바람이 불었는지, 간식 코너에는 머랭 쿠키만 한 가득 나왔다.

으. 나는 머랭 쿠키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레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다.


싫어하는 것이 또 있다.

 같은 기능을 가진 물건이 여러 개 생기는 것.

무언가 관리하고 신경 쓰고 마음 쓰는 일들은 진짜 귀찮다.

그래서 웬만하면 같은 종류로는 잘 사지 않는다. 운동화도 하나 사서 다 떨어지면 다시 산다.  대신 한 번 구매한 건 너무 사랑해서 금방 닳아 떨어진다.


사야겠다 마음먹은 건 돈과 상관없이 지르는? 편인데 한번 눈이 돌면 할부를 해서라도 산다. 그것에 노예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내가 무섭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 누가 말려도 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었는 데 소비 습관과 연애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한다.

인정인정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멀뚱멀뚱 있다가 갑자기 확 지르는 연애를 많이 했는데, 소비 패턴이랑 비슷한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걸까? 아니면 나의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내 마음을 소비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걸까?


물론 사람 마음이란, 너무 복잡하니까, 단칼에 이유를 내밀수 없겠지만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마음이 컸던 건 사실이다. 지나간 모든 이에게 (x 같았던 인간 포함)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해. 나는 당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건지 나를 사랑한 건지 이제 헷갈려.


사랑이란 타자를 위한 행동이 아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고, 자신의 감정이 일어나고, 자신의 삶이 변한다. 그러니 상대를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왜냐면 상대 역시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러도 타인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겠지.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있어 보이기보다 왠지 인간미가 없어 보이네. 사랑만 생각하라고 그렇게 써재껴놓고 이제와 발뺌하니 빼애애앰- 앞뒤가 맞지 않다.

뭐가 더 진심인지 모르겠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런 인간 집에 잡동사니가 많은 건 딱 한 가지 이유다.

내가 산 물건들이 아니다. 그저 이전부터 존재한 출처 불분명한 물건과 누가 준 물건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가만있어도 물건이 생기는? 타입이라 물욕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간절함이나 욕망이 남들에 비해 뒤떨어지나?


왠지 욕망 없는 인간이라고 칭하며 스스로 바라보니 약간 측은해지네. 인간에게 욕망이 없으면 꽤나 루즈한 삶이 될 것 같아. 루즈를 넘어 죽음의 세계인가.


최근 나는 공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해함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했다.새벽 5시에 일어나 베란다에 쌓인 많은 잡동사니를 버리고 정리했다.


가을 땡볕에 죽을 뻔했다.후.


이리저리 꺼내고 보니 죄 쓰레기뿐이다.

정리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못 버린 물건이 또 한 가득.


왜 쓰레기를 방치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긴 그것들도 원래 쓰레기는 아녔으니까.

단지 이제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뿐.


사람의 마음 안에도 이유 없는 감정 쓰레기들이 많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는 건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으휴.

일기에 모르겠다는 말만 백번 다.

맥락도 없고 주제도 없고 그냥 주저리주저리네.

그야말로 모르겠다는 말이 진짜 나를 알고 있는 단어구먼.


이제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하다.

청명한 하늘과 바람 냄새가 좋다.


베란다도 깨끗해지고,

가을밤도 깨끗해지고,

내 마음도 깨끗해지고 있다.


뭐, 깨끗해지면 질수록 또 채우고 싶어 지겠지.

... 그날을 기다려본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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