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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17. 2018

열일

2018. 10. 17


아-
일을 안 하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엄마 냄새만큼 포근한 엄마 침대에서 엄마 이불을 덮고 지껄이는 헛소리. 나는 종종 인간의 의무와 윤리에 지쳐 삶의 의미를 잃은 참신한 헛소리가 나온다. 

이 시대를 버텨낸 현명한 엄마의 솔루션은 다음과 같다.


있지.


뭔데?


노숙자.


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는 지난 겨울 경포 바닷가에서 젊은 노숙인 여성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머리 위는 언제나 노란 안전모로 뒤덮여 있었단다. 허기가 아닌 머리를 지키려는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너 그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바쁘고 치열하게 돌아다니는 줄 아니?


.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나는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는 일에 약간 지쳐있다. 배가 고프지 않고 먹고 싶다는 욕망도 없다면? 살아있는 일은 왜 이렇게 품이 드는 걸까? 단순 의지로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


의식주를 갈구하고 최소한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인생.


아. 인간 노릇 꽤 피곤하네.

얼척없는 딸자식의 헛방구 같은 말에 엄마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그러니까,
김 씨평소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팔뚝을 휘감는 서늘함과 코를 찌르는 역한 술 냄새에 선잠이 깬다. 
밑에서부터 뱃속까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이한 기분. 천천히 초점이 맞춰지는 공포 영화의 카메라처럼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무언가 자신의 중요 부위를 주물떡주물떡 거리는 손길을 느끼게 되는데...


아앗!

너 이쇄키 누구얏!


상황은 이러했다.

추운 겨울, 한 노숙인이 거리를 배회하다 무작정 삘이 오는 아무 원룸 건물로 들어간다. 1층부터 이 문 저 문 그냥 당겨본다. 그는 자신이 노숙 신세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문을 당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지구 상에 누군가는 문을 열어두고 잘 거라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모든 문을 당겨본다.
그렇다. 문은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 법.


결국 살을 에는 추위를 이길 방법이 없던 남자는 때마침 열린 한 퀴퀴한 사내의 방에 들어선다. 새근새근 잠든 사내를 보니 얼었던 혈관에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그렇게 가질 수 없는 행복한 꿈에 취해 (본의 아니게?)  남의 사타구니 사이를 주물떡 거리며 스르륵 잠이 들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란 정말 외로움의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스킨십이라니. 의식주가 해결된 이후 몰려오는 애정 결핍의 감각이라니.
물론 부위의 문제가 있었지만.

얼마 전 홍지민이 티브이에 나와 알려준 썰에 따르면 사랑의 언어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스킨십,
칭찬,
함께 보내는 시간,
선물,
그리고 밥 차리기와 같은 상대를 위한 봉사.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받는다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

 

나 같은 경우 세상 다정한 것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그동안 나 얼마나 '사랑에도 표현이 필요하고 표현에도 사랑이 필요하다 '외쳤는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밥 해주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봉사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다. 이제야 약간 퍼즐이 맞춰진다. 때론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마음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공기 중을 헤매고 다닌다는 것.


뭐든 챙겨주는 엄마 앞에 서면 나는 대략 3살 정도로 돌아가게 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아기새처럼 입만 벌리고 있다. 나는 막내로 자랐고 막내로 살았으며 별일 없으면 막내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물론 받기만 하는 일은 때론 굉장히 불편하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집안 식구들을 원망한 적도 많았고 할 수만 있다면 엄마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 맨 처음으로 태어나고 싶다며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막무가내'가 '막내'의 뜻인가. 흠흠.)


마음이 이리저리 노숙하고 있던 나는 이제야 열일하는 느낌이다. 이토록 혜택 받고 살 수 있었던 일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부족한 자식이라는 마음의 부채가 날 괴롭게 하지만, 능구렁이처럼 유들유들 뻔뻔한 말을 잘도 한다.


마음의 프로페셔널이란 게 뭐 별거인가.

상대가 보여주는 사랑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그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것.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간절하지 않은 건 아니며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고 깊이가 없다는 건 아니다.


짧은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심플할지도 모르겠다.


보여 주는 그대로 사랑받고,
받은 그대로 사랑 주겠다는 다정한 결심을 하며.


사랑할 수 있는 동안

의심도 불안도 방황도 없이

잘 사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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