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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다. 온몸에서 열이 났다.
엄마가 죽을 끓여줬다. 그걸 보니, 언젠가 민성이의 집에서 아팠던 날, 호들갑을 떨며 죽을 끓이다 태워 먹던 민성이가 떠올랐다.
민성이를 나쁘게 생각한다는 게, 다 내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민성이를 욕하면서라도 내 마음을 덜어내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정도로 이번에 걸린 감기는 아프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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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냐?
얼마 뒤, 친한 동기에게 술 한잔하자며 연락이 왔다.
동기는 나를 보러 굳이 이 동네까지 온다고 했다. 아마 내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거겠지... 헤어진 게 뭐 별일이라고 말이다.
술집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동기가 내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술 한 병을 비웠다.
"남과 남이 만나 세상에서 서로를 제일 아껴주는거. 그거 진짜 신기하지 않냐?"
"그럼 뭐하냐. 헤어지면 끝인데. 남는 거 하나도 없고."
"남는 게 왜 없냐?"
"뭐?"
"예쁜 사랑 했던 기억이 남았잖아."
"...취했냐?"
동병상련인 우린, 그렇게 만취할 때까지 술을 부어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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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를 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
날씨가 너무 추웠다. 분명 다음주면 3월인데, 3월이면 봄일 텐데. 왜 이렇게 추운 거지? 술기운에 머리도 핑핑 돌았다.
저 멀리, 흡연구역에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난 벤치에 기대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라이터 가스를 다 썼나보다. 그 순간 민성이 생각이 났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 겹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헤어지면 끝나는 내 기간제 베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남이 되어버린 우리.
난 아직 기억에서 민성이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고, 만취를 핑계삼아, 민성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가 민성이가 전화를 받았다.
"민성아... 너무 추워. 집에 가야 하는데, 너무 추워서 못 가겠어."
"왜 연락했어... 우리 헤어졌잖아..."
“우리 남 아니잖아... 그치?”
“......”
“우리... 예쁜 사랑 했었잖아.”
민성이는 내가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슬리퍼도 짝짝이로 신고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깨물어주고 싶었다.
"왜 이러고 있어."
민성이가 들고 있던 겉옷을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민성이네 집에서 내가 자주 입던 네이비색 후드집업이었다.
걸친 옷에서 민성이의 집냄새가 풍겼다.
그러자, 그립던 마음이 왈칵 밀려왔다.
"고마워."
난 어찌할지 몰라 민성이를 꽉 껴안았다. 민성이의 품은 어느 때보다 따듯했고, 포근했다. 민성이도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분명 우리는 헤어지는 게 맞았다. 민성이는 너무나 착한 아이기에, 상처를 주더라도 내가 주어야 했고, 그렇게라도 헤어져야 했다.
그게 민성이를 마음 편히 보내주는 거라고.
그리고, 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정리하는 거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별을 이겨내기 쉬울 거라고...
이겨내기는 개뿔... 너무 보고 싶고, 민성이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기다리는 건 너무 힘들어. 깊어지면 끝이 더 괴로울 거고."
"......"
"그런데, 포기하기엔 너가 너무 좋아."
"누나..."
"나 어떡해?"
"어디에 있든, 누나만 괜찮다면... 언제나 누나 곁에 있을 거야."
고개를 들어 민성이를 바라보았다. 민성이의 눈가가 눈물에 젖어, 가로등 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민성이에게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 입을 맞추었다. 민성이도 흠칫 놀라더니, 내 목덜미를 잡고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
지금, 이 순간을, 이 감정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너 차 끊겼지."
"응. 아까 전에."
"...오늘 같이 있자."
그날 밤, 민성이와 나는 전처럼 함께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