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서 짐 좀 챙겨도 될까?"
그렇게, 우린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고, 민성이의 집으로 향했다. 늘 걷던 길은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졌다.
집 앞에 도착했고, 민성이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을 눌렀다.
문이 열렸지만, 민성이는 문 앞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난 그런 민성이의 옷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짐 정리는 나 혼자 하게 해줘."
혼자 집에 들어온 나는, 서둘러 내 옷과 짐을 하나둘 가방에 담았다. 순식간에 가방이 꽉 찼다.
민성이의 공간에 내 물건이 이렇게 많았구나.
두 달 사이에 우리는 참 많이도 가까워졌구나.
세면용품을 챙기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민성이의 칫솔과 내 칫솔이 거울에 나란히 걸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난 내 칫솔을 들어 휴지통에 버렸다. 칫솔걸이는 놔두는 게 맞겠지. 비어있는 칫솔걸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민성이와 보낸 시간이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민성이와 함께 양치하며 쳤던 장난들. 형편없는 요리 솜씨에도 날 먹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민성이의 뒷모습. 포근했던 민성이의 품에서 잠이 들었던 나날.
찰나의 순간을 지냈던 공간 속에, 남아있는 따뜻했던 기억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난 서둘러 수도꼭지를 돌려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
얼마 뒤, 난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민성이의 집 현관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던 민성이가 내 짐을 들어주며 말했다.
"가는 길만이라도 데려다줄게."
민성이의 눈도 퉁퉁 불어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 못 했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자, 민성이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울먹이며 고개를 돌렸다. 난 민성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어느덧 버스가 도착했고, 난 서둘러 짐을 챙겨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에 민성이가 나를 보고 있었고, 난 애써 그 모습을 외면했다.
민성이는 내가 자기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를 보았다.
난 버스 창가에 기대어,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민성과 지나던 거리, 민성과 자주 가던 고깃집. 민성과 손을 잡고 걸었던 가로수 길. 버스는 내 기억과 반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터널로 들어서자,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러자, 민성이에게 하고 싶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너만 끝을 알고 있었던 거야.
이럴 거면 좋다고 하지 말지.
잘해주지 말지.
좋아하게 하지 말지.
나쁜 놈. 쓰레기 같은 놈. 평생 영국에서 김치도 없이 지내라.
버스를 내려 지하철을 탔고, 어느덧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우산이 없는데 말이다. 우산을 파는 곳도 마땅히 없어,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갔다.
비는 무섭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