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여름 같던 가을볕도 서러웠다
겨우 너덜거리는 마음 붙잡아 나무사이를 거닐뿐
그는 슬며시 나와 걸음을 맞추었고
조용히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봐
뭐가 보이니
조용하고 나즈막한 언덕이요
언덕을 넘으면 뭐가 보일까
적막한 산들이 병풍되어 있겠지요
산들을 지나면 뭐가 나타나겠니
참 어려운 바다가 거기 있을거에요
바다를 건너간다면 또 넌 뭘 보겠니
또 산을 만나고 숲을 보겠지요
그러다 또 바다를 만나구요
아마 이름 모를 것들이겠지요
끝은 있을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니 뒤통수, 지구는 둥그니까
허전한 한줌 숨을 뱉은 그가 말했다
가만히 앞으로 가면서 남겨둔 뒷모습
여린 저녁 바람에 선한 낙엽
삶처럼 떨어지는 가을을 우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