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운한 가을을 앞서가며

#620

by 조현두

그 날은 여름 같던 가을볕도 서러웠다

겨우 너덜거리는 마음 붙잡아 나무사이를 거닐뿐


그는 슬며시 나와 걸음을 맞추었고

조용히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봐

뭐가 보이니


조용하고 나즈막한 언덕이요

언덕을 넘으면 뭐가 보일까


적막한 산들이 병풍되어 있겠지요

산들을 지나면 뭐가 나타나겠니


참 어려운 바다가 거기 있을거에요

바다를 건너간다면 또 넌 뭘 보겠니


또 산을 만나고 숲을 보겠지요

그러다 또 바다를 만나구요


아마 이름 모를 것들이겠지요

끝은 있을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니 뒤통수, 지구는 둥그니까


허전한 한줌 숨을 뱉은 그가 말했다

가만히 앞으로 가면서 남겨둔 뒷모습


여린 저녁 바람에 선한 낙엽

삶처럼 떨어지는 가을을 우린 걸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은 책꽂이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