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격 없는 위로

#692

by 조현두

그 때
햇빛은 담장을 타고 흘렀지만
너는 주로
그늘진 쪽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두 손을 배 위에 얹고 있던 너를
나는
비껴보듯 지나치고 말았다


늦은 오후처럼
나는 길게 따라오던 그림자였고
너는 자꾸
햇빛을 등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날의 너를 떠올리면
나는 그림자 바닥에 기대어
조용히 몸을 웅크린다


부디, 우리의 그림자 가운데 다시 햇살이 머물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구겨진 종이로 접은 비행기도 하늘을 날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