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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

#704

by 조현두

그날 밤
말은 입술을 맴돌다
풀잎처럼 접혔어요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옆에서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들었고
그것만으로 사랑이라 여겼지요

내 마음은
잎맥 따라 흐르는 물 같아서
당신의 손끝에도
늘 먼저 닿고 싶었지만


너무 가까우면 부서질까 봐
몇 번이고
내 안으로 접어두었어요

내가 사랑했던 것보다
사랑받은 것이 많았고
당신이 준 따뜻함은
내가 한 말보다 조용했어요


지금도
당신 생각을 하면
심장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말이 하나 떠올라요

여한 없다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눈물 끝에서
나왔는지 당신은 모르지요

이제야
나는 나를 조금씩 꺼내
당신에게 내보여요
너무 늦은 마음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내가 많이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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