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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볕 아래서 그림자가 짙어져가고

#727

by 조현두

그 여름엔 웃음이 물처럼 흘렀다

햇빛은 무릎 위에 맺혔고

나는 자주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지나가는 구름도 우리를 닮아 다정했다

귤껍질을 벗기며 나눈 농담 하나로

반나절이 훌쩍 갔다

그 여름은 너무 밝아서

그림자조차 숨었다


지금, 나는 말이 줄었다

창밖은 매일 다르지만

나는 매일 같았다

누가 건넨 커피는 미지근했고

말들은 옷을 벗고 뼈만 남았다

퇴근길엔 늘 이어폰을 꽂고

작아진 내 그림자를

천천히 따라 걷는다


어제 주말엔

더운 방을 청소하다

무심코 그가 좋아하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숨이 막히듯 멈췄고

멜로디는 입안에서 부서졌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숨결 사이로

나는 오래된 내가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 시절은 내 안에 남아

한낮처럼 작열한다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지만

여름볕은 자꾸만 속을 말려

말끝마다 금이 가고

웃음은 입술에서 부서졌다

그리고 말 없는 날들이

점점 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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