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
이젠 아무도 목숨 걸고 사랑하지 않는다.
목숨을 지키기에도 벅찬 세상이니까.
오전에 내린 비가 그쳤다.
창가에 남은 물방울은 흘러내리다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말라붙었다.
아스팔트 위로 옅게 퍼지는 젖은 흙냄새.
젖은 하늘을 닮은 사람들을 본다.
사랑이란 말을 꺼내기 전에,
계좌 잔액과 연차 일수를 먼저 확인하는 사람들.
언제든 비를 핑계로 자리를 뜨는 연인들.
귓가에 스치는 무심한 마른 바람 소리.
그래도 나는 누군가를
목숨만큼은 아니어도
한 계절쯤은 사랑해보고 싶었다.
잊을 때까지가 아니라, 흐릴 때까지.
우산 없이 나섰던 날처럼,
내가 그늘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당신이
비를 피해 잠시 머물다 가도 좋겠다고.
하지만 끝내
나는 내 생을 담보하지 못했다.
다정한 말 몇 마디와
퇴근 후의 피로를 털어주는 손길 이상은
그리 내어줄 수 없었다.
어깨에 얹힌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
생각해보면,
나도 결국 그 흐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비가 그친 오후,
무심한 하늘처럼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심해졌다.
어쩌면 이 무심함도 한 형태의 사랑일까,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