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779

by 조현두

당신을 만나
사랑하는 일은
눈사람을 만드는 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자
눈이 묻었다
차갑고
곧 물이 되는 것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눈을 굴렸다
손바닥의 감각이 먼저 사라졌다

형태는
생각보다 빨리 생겼다
나는 얼굴을 만들지 않고
몸부터 세웠다

낮이 지나갔다
빛이 이동했다
눈사람의 어깨가
조금씩 낮아졌다

나는 가까이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녹는 속도를
막지 않기 위해

저녁이 되었을 때
눈사람의 목에는
내가 벗어 두고 온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밤이 지나고
눈사람은 더 이상
눈사람의 모양이 아니었다

아침에는
물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잠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눈이 온다면
나는 역시
눈을 굴리고 있을 것이다

다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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