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어쩐일인지
여름이 없었다
굳은살 배길 것 같은 뜨거운 볕이 없었기에
여름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허투루 지나갔다
축축하게 젖을 시간이 없었고
얼룩지며 열매가 익어갈 시간이 없기도
맹렬한 비바람에 창문이 흔들릴 수 없었으며
나는 열심히 살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을은 초라했다
옅은 단풍은 심심했고
작은 열매는 밍밍했으며
계절의 서늘함도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 해 여름은 그랬다
여름이 아니였더라도
나는 그 시간들 사랑하였더랬다
그래도 여름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