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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두 Mar 18. 2024

그렇지 않았다

#517

그 해 어쩐일인지

여름이 없었다

굳은살 배길 것 같은 뜨거운 볕이 없었기에

여름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허투루 지나갔다


축축하게 젖을 시간이 없었고

얼룩지며 열매가 익어갈 시간이 없기도

맹렬한 비바람에 창문이 흔들릴 수 없었으며

나는 열심히 살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을은 초라했다

옅은 단풍은 심심했고

작은 열매는 밍밍했으며

계절의 서늘함도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 해 여름은 그랬다

여름이 아니였더라도

나는 그 시간들 사랑하였더랬다

그래도 여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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