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두 Aug 27. 2024

잿빛 속에서

#582

가을의 잿빛 숲
바람에 흩날리던 잎들은
눈물처럼 내려앉았습니다

가슴이 성긴 돌처럼 무너져 내려 앉는 순간


어리숙한 바람이 초록의 숨결을 거칠게 찢어놓은 까닭

총기가 가득하여
초록을 뽐내던 숲은 사랑으로 타올랐을테지만
결국 희멀건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이 오랜 숲은

숲은 저를 내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였을 테지요

가시로 가득찬 덩굴 조차도 아름다웠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눈먼 열망에 숲은 바스라져버렸습니다

차갑게 내리쬐는 달빛만 남아 겨우 이 숲을 매만질뿐이니

어린나무 잔가지마냥 미숙한 마음만 흔들리니

오랜 마음은 죄인처럼 잿빛을 헤매입니다


결국 희미한 달빛은 때를 맞추지 못한 열망을 비웃을 뿐 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잿빛 숲은 모든 걸 잃었는지 모릅니다


잿더미에 남은 불씨는 가시가 되어 심장에 모질게 박혔기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죄의 흔적으로 남았던가요

시간은 이 잿빛 숲에서 영원히 속죄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결코 푸름이 돌아오지 않을 듯한 환청 속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무릎 아래 자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