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하게 된다면 거실엔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싶었다. 테이블 위치는 어디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놓아도 괜찮을 것 같고, 한쪽 벽을 따라 길게 놓아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앉아서 창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왜 거실에 테이블을, 그것도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싶었을까.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거실 모습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언젠가 본 거실 인테리어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독립이 본격화되며 나는 6인용 테이블을 보유한 1인 가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가장 먼저 구입한 가구도 테이블이었다.
미리 날짜를 지정해놓아 독립 첫날 테이블을 받을 수 있었다. 텅 빈 거실에 6인용 테이블만 달랑 놓였다. 그때만 해도 거실엔 테이블과 책장만 놓을 생각이었으므로, 키 작은 3단 책장이 갈 곳을 정하니 자연스레 테이블은 그 맞은편 벽 쪽이 되었다. 벽면을 따라 메이플색 테이블을 길게 놓았다. 부모님은 혼자 살면서 이렇게 큰 테이블이 필요할지, 식탁은 따로 없는지 묻고 싶은 눈치였으나, 엎질러진 물에 대고 괜한 말을 하는 대신 테이블이 크네, 라며 사실만을 말하는 길을 택했다.
다음 날 책장도 배달되었다. 키 큰 책장은 서재에, 키 작은 책장은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맞은편 벽에 책장을 붙이고 보니 키 작은 책장을 구입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느낌도 주지 않고 선반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맞춤한 책장. 거실 책장엔 책등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들과 요즘 읽는 책들을 꽂아 넣었다. 책장 위엔 엄마가 그려준 해바라기 그림을 올렸다. 해바라기가 만개한 밭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엄마표 그림이 거실의 여백에 풍요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드디어 꿈꾸던 거실이 실현되었다. 커다란 테이블과 키 낮은 책장. 앞으로 두 가구를 오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테이블에 앉아선 밥 먹고 글 쓰고 책 읽고 영상을 보겠지. 책장에선 읽고 싶은 책을 꺼내오고, 가끔은 그냥 책등을 보며 뿌듯해하겠지. 내가 좋아하는, 또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엔 두 가구만으로도 충분할 듯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아서 일주일 후 키 큰 조명을 들였고, 두 달 후엔 3인용 패브릭 소파도 들였다. 단출한 나의 공간이 완성됐다.
내겐 딱 좋은 이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겐 뭔가 좀 부족한 공간인 듯도 하다. 살펴보면 있을 건 다 있지만, 잘 생각하면 너무 있을 것만 있는 공간. 잠시 머무는 사람에겐 여유롭게 느껴지는 공간이더라도, 며칠 머물다 보면 어쩐지 좀 무미한 공간. 때로 한 사람의 취향은 그가 지닌 물건으로 알 수 있는데, 책을 제외하곤 내 취향이 거의 묻어나지 않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심심한 공간이 되는 듯도 했다.
부모님에게도 그래 보였다. 딸이 보고 싶어 오긴 왔는데, 왔더니 할 일이 없어 당황한 눈빛을 여러 번 봤다. 볼 것도, 할 것도 없어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두 분이 웃겨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했다. 효도 명목으로 텔레비전을 구비해야 할지 고민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부모님의 공간엔 텔레비전이 필요하지만, 내 공간엔 필요하지 않으므로.
딱 봐도 아빠가 더 부침을 겪었다. 집에선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걸 할 수 있던 아빠에게 둘째 딸 집은 그렇지 않은 공간이었다. 넌지시 소형 텔레비전 이야기를 꺼냈다가 거절당한 아빠는, 이후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딸 집에서 시간을 보낼 방법을 하나둘 터득해갔다. 그중 하나가 어느 날 아빠의 오른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기타였다. 몇 년째 기타를 배우고 있는 아빠가 딸 집에서의 시간이 알차게 흘러가길 바라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작은 방에 세워놓은 기타는 아빠가 올 때마다 소리를 낸다.
시간을 보낼 아이디어를 굳이 내야 할 만큼 단출한 공간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다른 곳과 다른 식으로 시간을 보내게도 된다.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을 때면 눈을 둘 곳도, 관심을 둘 곳도 같이 앉은 사람밖에 없는 공간. 음악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공간에서 부모님과 나는 아침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짧게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두 시간 진득하게 나누는 대화는 우리 가족에게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나로선 텔레비전 대신 해드리는 효도다. 함께 살며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알던 딸을 한두 달에 한 번씩 보는 섭섭함을 대화로는 다 풀 수 없겠지만, 그래도 계속 말을 걸며 섭섭함의 크기를 줄여드리는 것이다. 서로가 보내는 일상의 세세함을 잘 모르기에 나는 예전보다 더 우리의 대화가 흥미롭다. 예전엔 눈으로 보고 바로 알 수 있던 상대의 삶이 이젠 상대의 말을 통해 흘러나오는 터라, 분명 그 속엔 상대의 판단에 따른 각색이 있으리라는 것은 안다. 각색을 눈치채면서도 들리는 그대로 대꾸하고 웃고 농담한다.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커피를 리필하며 대화는 이어진다. 서로의 친구 얘기를 할 때도 있고,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할 때도 있다. 얘기가 길어지다 보면 언제나처럼 누구 하나가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또 언제나처럼 누구 하나가 기지를 발휘해 분위기를 전환한다. 아슬아슬한 시간을 무사히 지나면 이번엔 따뜻하고 좋은 말이 오간다. 우리 가족이 가장 잘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북돋기 위해 혼자 해왔던 생각을 가족을 북돋기 위한 말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북돋기 위해 하는 말은 늘 다음의 문장 언저리를 돈다. 삶은 대체로 고되고 힘에 부치지만 그럼에도 빛 하나쯤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 가끔 한 명이 빛의 존재를 잊으면 그 존재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게 우리 가족의 임무다. 상대가 빛을 스스로 찾지 못하면 직접 찾아 손에 쥐여주는 것까지가 임무의 완료다. 손에 쥔 빛을 빛으로 볼 건지 아닌지는 빛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달렸다.
대화를 하다 하다 더 할 얘기가 없으면, 부모님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창으로 다가간다. 창밖을 바라보는 부모님에게 내가 뒤에서 말한다. 걸을까? 내게 걷기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은 그러자며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선다.
테이블에 앉아 지인들과 놀다 보면, 내가 왜 커다란 테이블을 거실에 놓고 싶어 했는지 알겠다. 어느 영화에서였을까. 아니면 드라마에서였을까.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밥 먹고 웃음 터트리며 대화 나누는 모습, 이 모습이 좋아 보였던 것 같다.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두며 즐겁게 얘기 나누는 시간. 이 시간을 만들어주는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 우리 집에도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면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혼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노래를 부르다가 혼자 살게 됐는데, 가장 사고 싶던 물건이 테이블이었던 건 그렇다 치고, 그 테이블에서 사람들과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수다 떨 꿈에 부풀어 있었다는 것이 내게도 좀 재미있다. 하지만 알 것도 같다. 내 안에서 혼자 사는 삶은 고독이나 고립과 결코 같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게 혼자 사는 삶은 자유, 안락, 편안함에 맞닿아 있다. 자유롭게, 안락하게, 편안하게 일상을 살다가 일상이 내게 주는 힘을 바탕으로 삶과 연결되길 바랐던 것 같다.
지난겨울, 테이블 위치를 바꿨다. 앉아서 창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반대편 아파트와 그 아래 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찻길도 보인다. 가만히 앉아 아파트도 봤다가, 공원도 봤다가, 찻길을 달리는 차도 본다. 그러다 고개를 내려 글을 쓴다. 지금처럼. 커다란 6인용 테이블에서 가장 많이 하고 싶던 건 읽고 보고 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