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집보다 논과 밭이 훨씬 더 많은, 작은 시골마을에,산을 지나 뚝방길 아래로 내려가면 왼쪽 세 번째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사시던 집.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난 이집으로 왔다. 시골에서는 흔치않는 빨간벽돌의 양옥집이었다.할아버지 말씀으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을 사서 새로 지었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다른 집들에 비해 새집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잘생긴, 다부지신 분이셨다. 팔다리도 길었는데 그 유전자는 나에게까지 오진 못했던것 같다.할머니는 키가 작고 동그란 체형을 가지셨는데, 손이나 발도 아주 작으셨다.아마 나의 유전자는 모두 할머니한테 물려받았나 보다.
내가 막 도착 했을때, 처음 눈에 띈 것은 동글동글한 똥개 한마리였다.내가 온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 진돗개라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셨다고 한다.암컷의 하얀 강아지였는데, 여러 번의 고민 끝에 그 아이는 "진주"라는 이름이 되었다.내가 온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많이 들떠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 강아지와 쭉 함께였다.
그 시골 마을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쭉 보냈는데,집집마다 강아지가 꼭 있었고,한 마리가 짖으면 곧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어댔다.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강아지도, 길고양이도, 염소에 닭에 토끼에..동물이 참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물을 좋아하신 것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마음이 여리셔서 동네의 길고양이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동네는, 온 동네 어르신들이 고양이들의 주인이었다.분명 주인은 없는 것 같은데, 이 집 가서 밥 얻어먹고, 저 집가서 자고, 또 다른집가서 밥먹고.. 그러다가 새끼라도 생기면 어딘가에서 낳아와서 그들을 데리고 같이 밥 먹으러 다닌다.그곳은 모두 고양이들의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