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본 글은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climbthebooks/18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조직문화는 특정 조직 내 구성원들의 고유한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고유한 행동 양식'은 넓게는 일종의 관습법이자 보이지 않는 규율이고, 좁게는 개인으로서의 가치 판단을 가능케 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다. 이 모든 요소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지금 당장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하더라도 피상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깊이 있는 공감 없이는 금세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게 뻔한 일이다.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고 조직의 지침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리더의 확고한 의지와 리더를 포함한 전 구성원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래는 과거 SK그룹의 사례를 다룬 경영사학회 논문 중 일부다.
1983년 SKMS(SK그룹 선경경영시스템)가 만들어지고 소개되었지만 모든 구성원들에게 널리 확산되지는 않았다. 주로 경영자 및 관리자들 위주로 전파가 이루어졌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에게 SKMS를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적 실행을 촉진하는 수단이 필요하였다. 사례조직의 SKMS는 인적자원의 활용에 대한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에는 추상적인 한계가 있었다.
장용선, 『조직문화의 형성 및 확산 : SK그룹 사례』, 한국경영사학회, 2022
과거 고 최종현 회장은 SK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함에 따라 조직문화와 경영시스템을 새로이 갖춰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SKMS는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조직문화'를 제창하는 리더에 의해 주도적으로 창설되었지만 초창기에는 문화라는 것이 갖는 추상적인 면모 때문에 금방 퍼져나가지 못했다. SK그룹만의 조직문화는 제정 이후 내부 구성원들에게 확실히 스며들기까지 1989년부터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1993년, 고 최종현 회장은 SKMS의 제정과 전파 과정에 대해 "제정 이후 확산 방식에 문제가 있어 업무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SUPEX(Super-Excellent)를 만들었다"라고 회상했고, 한 직원은 이에 "모든 조직단위에서 SUPEX를 적용하고 개발하며 모호하던 가치가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직원들의 마인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더 나은 모습을 구축하겠다는 리더의 강경한 태도와 꾸준함이 전 구성원들의 노력과 합쳐져 그들만의 기업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SK그룹은 10년 간의 조직문화 정착기를 거쳐, 2013년엔 문화 도입 초기에 비해 240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당시 기업 구성원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통된 가치관을 추구하고, 목표에 대해 서로 활발하게 의사소통한 결과라고 매듭지었다. SK그룹 회장으로부터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된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을 비롯해 사소한 행동거지, 업무를 대하는 자세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것이 모두 그 가치관 하나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진위여부를 직접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정착기를 거쳐 엄청난 성과 창출을 가능하게 된 데에는 분명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여러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니다. 'D' 스타트업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소비자에게서 찾았고 어떤 문제든 소비자 관점에 몰두하여 해결하고 결정한다는 그들만의 일 방식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파생된 문화,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들은 독특한 업무 방식을 갖고 있고, 복리후생제도 또한 독자적이지만 방향에 맞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S'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언제나 일의 맥락과 근본적인 이유를 묻는 일종의 관습을 갖고 있다. 때문에 무슨 일이든 논리적으로 행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과정은 지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은 목표에 공감하고 가치를 이해하면 누구보다도 든든한 동료가 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이러한 조직 성격을 반영해 조직 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일하는 방식이나 업무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경우다. 구심점이 있기에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지 수가 많다. 또, 이후에 합류하는 사람들 또한 그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채용 프로세스는 당연히 탄탄할 것이고, 또 신규 인원에 대한 채용 자체는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의 세 가지 경우는 모두 혼자서 가능케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뜻으로 모일 수 있는 가치관이 있어야 하며, 또 그에 충분히 녹아드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심신으로 발현되고 더 나아가 업무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을 때 비로소 하나의 조직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땅을 고르고, 건축 설계를 하고, 골조 작업 등을 거쳐, 내/외부 공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내부 인테리어까지 마치면 건물의 외곽이나 내부 모습은 많이 정돈된 상태가 될 것이다. 건축이라는 일개 과정을 떠올렸을 때 건물을 짓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건물은 예비 사용자의 사용 목적에 따라 지어지고 나서 완공 이후에는 간단하거나 복잡한 수리 등 건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어야 한다. 손길이 닿지 않는 건물은 대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다.
조직문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정성스레 가치를 그저 쌓아 올리기'만' 해서는 끝날 일이 아니다. 문화는 사회 또는 단체 구성원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해서 답습해 온 추상적인 행동 규칙이다. 즉,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도 리더와 구성원들은 모두 이 흐름이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일정 수준의 관심을 쏟아야 한다. 특히 리더는 스스로가 공표한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따르고 그에 기반하여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상황에 더 이상 문화를 이어나갈 의지를 갖지 못하게 되고, 초기에 잘 쌓아두었던 그들만의 행동 양식은 금세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조직문화라는 건 그 개념 자체로 추상적인 만큼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데 있어서 무형의 자원이 투입된다. 그 자원의 양은 정확히 측정할 수도 없고, 설령 측정이 가능해서 5만큼의 자원을 투자한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그보다 낮거나 높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 자체가 갖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기업 조직문화가 성공의 필수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현상 쇄신을 위해 분투 중에 있다. 리더와 구성원들로 하여금 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게끔 만드는 건 지금 속해 있는 조직이 '괜찮은 조직'이 되었으면 하는 선망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