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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Aug 22. 2024

기록, 정체성의 혼란을 재구성의 여정으로 이끄는 나침반

[!Summary]
삶의 흐름에 따라 페르소나의 중요도는 변화하고, 이에 따라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기회이며, 기록을 통해 이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기록은 자기 성찰과 목표 설정을 돕고, 변화하는 페르소나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며 성숙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합니다.



자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아버지도 다른 맥락에선 선하다. 그런데 의미의 다면성을 무시하고 땅땅땅, 판결봉을 휘둘러도 될까? 다면체의 한쪽 면만 강조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 아닐까? (중략)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피곤해 하는 시대, 복잡한 이해관계나 사연을 단순화해서 세 줄 요약으로 알려주길 기대하는 시대이기에 저런 류의 망설임은 소중하다. 하지만 창작을 하려면 어느 순간에는 주장으로 도약해야 한다. (중략) 자신이 전방위에서 수집한 정보가 모두 동일하게 의미 있다고 여긴다면 무엇도 주장할 수 없다. - [[에디토리얼 씽킹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최근에 [[The Power of Writing It Down]]을 완독했습니다. 이 책에서 제게 의미 있었던 한 가지를 꼽자면, 우리가 fact를 바꿀 수는 없어도 어떤 맥락에 이 fact를 위치시킬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대목입니다. 글쓰기는 다양한 맥락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창의적 공간을 제공하는 유용한 툴이고요.


자기정체성과 관련하여 이야기해 본다면, 살아가면서 모든 맥락을 다 취할 수는 없습니다. 독서가, 언어학습자, 상담자, 두 아이의 아빠 등 맥락에 따른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닐 수 있지만, 이를 통합하는 자기만의 관점이 없다면 정체성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창의적으로 여러 맥락(페르소나)을 실험해 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만약 ~한다면?) 에디토리얼 씽킹 저자의 말처럼 어느 순간에는 도약하여 모든 맥락을 통합하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약한다는 것은 페르소나에 가중치를 다르게 둔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내 안의 여러 페르소나에도 좀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겠죠.


그런데 이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게 어려운 일일 뿐더러 한 번 정한 우선순위가 계속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중년의 위기라는 것도 오는 거겠죠. 페르소나의 가중치를 다르게 둠으로써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믿으며 살아 왔는데, 어느 순간 그 정체성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고 의미와 삶의 방향성을 모두 상실하게 되기 쉽습니다.


삶은 계속 변화하는데 우선순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죠. 그런 면에서 보면 위기는 중년만 겪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년의 위기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많고요. 일례로 Bruce Feiler는 삶의 큰 변화가 2~5번은 찾아오며, 한 번의 변화가 완료되는 데 평균적으로 5년이니, 최대 25년의 이행기를 거치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인생의 대략 1/3이 위기인 셈입니다.


페르소나의 우선순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게 자연스럽고, 프레임을 조금 달리 해보면 이는 새로운 자아를 구성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즉, 무너진 잔해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우선순위를 발견하고, 변화된 맥락에 맞춰 페르소나의 가중치를 재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단단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정리해고 당한 이후에도 더욱 단단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김경숙 님이 즉각적으로 떠오릅니다.


새로운 자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록은 필수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딘지 가늠할 수 있게 돕는 것은 기록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꾸준히 뭔가 기록에 남기다 보니, 거기서 새로운 맥락을 찾고, 덕분에 삶에 있어 새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차니 블로그 20주년 – 글쓰기에서 인생을 찾다


가령 저는 올해 말까지 달성하고 싶은 목표, 5년 후 목표, 10년 후 목표를 적어 놓은 옵시디언 노트가 있습니다. 이 노트는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보면서 필요한 경우 수정합니다. 처음에 5년, 10년 목표는 현실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목표들을 두서없이 적어 놓았으나 점점 현실성과 구체성이 부여되고, 그만큼 이 목표들을 달성하고 싶다는 동기도 커짐을 느낍니다. 목표를 수정할 때마다 현재 어떤 페르소나에 더 가중치를 두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글은 MarkedBrunch를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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