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언급됩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라는 말이 그대로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 내린 아침의 공기는 평소와 조금 다르다. 포근한 것 같은 느낌, 눈에 반사된 빛 때문에 세상이 온통 밝아진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소리가 다르다. 발걸음 소리도 말소리도 눈에 흡수된 것처럼 조금은 웅웅하면서 뭉개진다. 그 살짝 뭉개지는 소리의 느낌이 좋다. 이 모든 감각이 눈을 뜨는 순간 내 마음에 입력된다. 그리고 "눈 왔다!"는 짧은 외침으로 쏟아져 나온다.
오빠와 큰 길가의 쌀집에서 비료 포대며 쌀 포대며를 얻어서 동네를 가로지르는 야트막한 언덕 위로 씩씩하게 오른다. 그곳은 이미 천연 눈썰매장이다. 출근하느라 종종 거리는 어른들 사이를,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엎드려서도 타고, 앉아서도 타고 지칠 줄 모르고 눈썰매를 탄다. 하나도 춥지 않다. "눈 오는 날은 거지가 빨래하는 날이래."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를 주고 받으며 깔깔 거린다. 금새 잠바며, 장갑이며, 신발로 물이 흠뻑 스미는데도 상관없다. "안 춥다 그치? 거지도 빨래하는 날이네에"
내가 그 날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만두'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만두'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먹을만큼 좋아해서 엄마는 겨울이면 항상 만두를 만들었다. 잘 다진 김치에 두부며 고기며 숙주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을 버무려서 만두 속을 만들었다. 그렇게 잔뜩 만들어낸 속을 방 한가운데 두고 긴 시간 동안 만두를 빚었다. 빚으면서 바로바로 한 김 쪄내고, 그걸 맛본다면서 몇 접시씩 비우고, "이러다 남는 만두가 있겠냐"면서 낄낄 거렸다. 만두 빚는 날은 평화로웠다. 암묵적으로 그랬다는 느낌이다. 전쟁 중에도 드물게 서로를 향한 포격을 멈춘 날이 있었다는 기록처럼, 일 년에 한 번 만두 빚는 날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그 날, 세상이 온통 하얗던 그 날이 때마침 만두 하는 날이어서, 우리가 눈썰매를 타러 나가기 전부터 엄마는 김치를 다지기 시작했었다. 하얗고 하얗던 바깥 세상에서 정신 없이 놀다가 배가 고파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김치를 다지고 있었고, 바깥 세상과 대비돼서인지 그 날의 우리집 작은 마당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뜨끈한 국물 같은 걸로 간식을 먹였다. "안 추워? 더 놀거야?" 물으면 오빠와 나는 "응!" 대답하고 다시 뛰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질리도록 눈썰매를 타고 돌아와도 엄마는 여전히 김치를 다지고 있었다. 물기를 빼기 위해 양파망에 가득 넣어 물통 같은 무거운 걸로 눌러둔 김치에서 붉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부엌에선 숙주를 삶고 고기를 볶은 냄새가 났다. 만두 빚는 날은 평화로웠다.
나나와 소라와 나기, 애자씨와 금주씨, 순자씨의 삶을 읽으며 내내 나의 삶을 떠올렸다. 어딘가 부서지고 깨진 사람들. 그 부서지고 깨진 것들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것도 쉽게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 그들이 순자씨와 일 년에 한 번 만두를 빚는 장면에선, '이거 뭐야, 이거 우리집이잖아'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뭔가를 잃은 후에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 문제는 뭔가를 잃은 적 없는 사람들도 그 결여를 금방 눈치챈다는 것이지만.
나나가 나기로부터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배울 때, 소라가 애자씨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빨리 걸을 때, 나나가 소라에게서 애자씨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애자씨가 금주씨의 죽음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점차로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고통을 완성하고 완전'해졌을 때, 나나가 모세씨에게 "아버지는 요강을 스스로 닦느냐" 물을 때, 모세씨가 좀처럼 나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우리 모두 알게 됐을 때, 나기가 사랑한 너를 몇 번이나 놓칠 때, 소라가 자꾸 신경쓰이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모든 때의 모든 감정들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아서 단숨에 읽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주변'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나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의 삶이 통째로 이해되었다. 작가는 그들의 삶에 어떤 변명을 해주지도, 되려 그들이 멋있고 괜찮다고 억지를 부리지도, 그렇다고 얘들을 어떡하냐고 가엾어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은 채로, 그저 바라본다. 그건 마치 순자씨가 애자씨를 두고 "어미로서는 몹쓸 지경이지만 사람으로서는 안됐다. 사람으로서는 안됐으나 어미로서는 몹쓸 지경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지라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가지 공간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니까.
나나는 아기를 낳을 것이고, 나기는 소리 없이 너를 찾아헤맬 것이고, 소라는 자꾸 신경쓰이게 하는 그와 자꾸 신경 쓰이는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애자의 삶은 오로지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서서히 완결될 것이고, 순자의 삶은 이미 나나 소라 나기의 삶으로 아주 따뜻하고 깊게 스며들어 있다. 나의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방향으로 그들이 살아간다고 해도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그들이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한,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들의 선택과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의 소리 없는 삶을 내내 지켜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모른 척 살아가겠노라고. 섣불리 아는 척 하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나도 조용히 되뇌인다. "계속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