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마다 특유의 공기가 있기 때문에 코 끝으로 시간의 흐름을 가장 먼저 느끼는 편이지만, 딱히 어느 계절을 타느냐 그렇게 묻는다면 뾰족한 대답은 없다. 그저 계절 마다의 공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랄까, 대비하는 편이랄까.
특히 더위를 타고 땀도 많으니 여름이 오기 전부터 유독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편이다. 그 마음의 준비란 게 대단한 건 아니고, 심호흡을 자주 하고 모든 행동의 속도를 좀 늦추는 정도지만 나에게는 그 정도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채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는 훅, 하는 감각으로 이미 더워진 공기를 느끼는 순간 마음이 갑갑하고 그러면 벌써 땀이 줄줄 흘러내리곤 했으니까. 선풍기를 닦아서 꺼낼 생각을 하며 찬찬히 심호흡을 하는 순간에는 마치 내가 좀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감정이 좀 더 미묘하게 움직이는 계절이라면 아무래도 봄이었다. 세상의 색깔이 한 톤 밝아진 것 같은 느낌, 갖가지 꽃내음과 풀내음으로 어지러울 정도인, 그러면서도 낱낱의 햇빛은 내 옷에 묻은 작은 얼룩까지 비추고 마는 계절. 나는 그 계절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부끄러워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노골적인 생명의 힘, 조용하지만 분명한 빛 속의 힘들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내 얼굴 표정의 작은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선명한 날들을 대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을은 나에게 좀 더 편안한 계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것이 봄의 기운이라면 가을이란, 정해진 것들을 정해진 수순대로 밟아가는 순응의 기운이랄까. 아직도 낮에는 덥다고 투덜거리다 보면 어느새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마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훌쩍 머플러를 둘러야 하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새삼 깨닫게 하려고 가을은 그렇게 불쑥 왔다가 가는 건 아닐지. 나날이 짧아지는 해는 날 좀 그만 비추라고 투정하게 만들기 보다는 되려 '어? 어두워졌네?' 하며 그리워하게 만든다.
어제는 늦은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커다란 단풍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다른 나무들은 이제 가지만 앙상할 정도로 잎을 다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데, 유독 그 나무만은 가지 가득 가득 잎이 그대로였다. 이제는 윤기가 마르고 색이 바랜, 게다가 바스락 소리가 날 만큼 오무라들어서 아기 손보다도 작아진 단풍잎인데도, 나무 한가득 무성하게 그대로인 모습에 어쩐지 괴리감이 느껴졌고, 을씨년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 돌아서서 다시 걸으며 이 기분은 제 때 떨구지 못한 잎들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만약 그것 때문이라면 때를 놓친 줄도 모르고 뭐든 움켜쥐고 있는 모습은 언제고 좀 불편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 우리는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심정이 되고,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놓아주려는 마음을 갖는지도 모른다. 다 시들어버린 단풍잎을 한 톨도 놓아주지 않고 을씨년스러워진 그 나무처럼 되지 않으려고, 뭐든 좀 보내주고 놓아주고 때론 잊어주려는 이 비움의 시간을 기꺼이 맞이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