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눈송이를 굴리는 일과 비슷했다.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김연수
#라이프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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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덧붙였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미워하는 일도 그렇다고. 미워할수록 더 미워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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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눈송이를 굴리면 날이 자꾸만 따뜻해져서 스르르 눈송이가 녹아버리고 마는데 그마저도 좋아서 싱글싱글 웃음이 나고. 미움으로 눈송이를 굴리면 날이 자꾸만 차가워져서 눈송이는 돌덩이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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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과 미워하는 일이 아주 멀리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쪽으로 가서 다시는 미워하는 일로 돌아오지 않으면 될텐데. 둘 사이는 한 줄에 매달린 벙어리 장갑처럼 붙어 있어서 매번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자꾸만 다른 쪽 장갑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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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미워하면 그이를 더 자꾸 미워하게 되는 것도 모자라 미워하는 일을 자꾸 미워했더니 그마저도 더 미워하게 돼서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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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으로 굴린 눈덩이가 산더미처럼 커져서 나를 짓누르기 전에, 그래서 나조차 미워해버리기 전에, 멀어진다. 공백을 둔다. 시간을 둔다. 그와 나 사이에, 나와 미움 사이에 둘 수 있는 건 다 두는거야. 그걸 놀이삼아 한다. 그 사이에 내가 아끼는 것들도 가져다 놓고 좋은 추억도 꺼내다 말린다. 해가 뜰 때까지. 다시 사랑으로 눈송이를 굴리기 좋은 날이 올 때까지. 그런 날이 온다면 반가울 것이고, 그런 날이 안 온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거리를 두게 될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