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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10. 2021

사랑하는 일과 미워하는 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눈송이를 굴리는 일과 비슷했다. 사랑할수록  사랑하게 된다."

#김연수

#라이프사진전

그는 덧붙였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미워하는 일도 그렇다고. 미워할수록 더 미워하게 된다고.

사랑으로 눈송이를 굴리면 날이 자꾸만 따뜻해져서 스르르 눈송이가 녹아버리고 마는데 그마저도 좋아서 싱글싱글 웃음이 나고. 미움으로 눈송이를 굴리면 날이 자꾸만 차가워져서 눈송이는 돌덩이가 되고.

사랑하는 일과 미워하는 일이 아주 멀리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쪽으로 가서 다시는 미워하는 일로 돌아오지 않으면 될텐데. 둘 사이는 한 줄에 매달린 벙어리 장갑처럼 붙어 있어서 매번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자꾸만 다른 쪽 장갑을 낀다.

누구를 미워하면 그이를 더 자꾸 미워하게 되는 것도 모자라 미워하는 일을 자꾸 미워했더니 그마저도 더 미워하게 돼서 괴로워.

미움으로 굴린 눈덩이가 산더미처럼 커져서 나를 짓누르기 전에, 그래서 나조차 미워해버리기 전에, 멀어진다. 공백을 둔다. 시간을 둔다. 그와 나 사이에, 나와 미움 사이에 둘 수 있는 건 다 두는거야. 그걸 놀이삼아 한다. 그 사이에 내가 아끼는 것들도 가져다 놓고 좋은 추억도 꺼내다 말린다. 해가 뜰 때까지. 다시 사랑으로 눈송이를 굴리기 좋은 날이 올 때까지. 그런 날이 온다면 반가울 것이고, 그런 날이 안 온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거리를 두게 될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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