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가구 사는 시골 농촌 마을에서 나의 첫 기억은 오빠들과 개구리 뒷다리를 삶아 먹던 기억이다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양은 냄비에 뽀얀 국물 속에 통통한 개구리 뒷다리가 있었다
둘째 오빠가 쥐를 잡아 죽은 쥐에게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죽었다고 생각한 쥐는 어설피 살아있었는지 뜨거운 불에 화들짝 놀란듯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그 환한 불빛의 향연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꼬마였다
우리집은 동네에 서너 채 밖에 안 된 부의 상징 기와집 중의 하나였고 엄마는 한복을 입고 집에 있었는데 떡장사가 오면 떡을 사셨다
집안 샘 가에 마중물을 부어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있어 여름이면 아버지와 오빠들이 등목을 시원하게 하던 모습이 그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시골에서 약간은 부유하게 살았다는 흔적으로 밤에 도둑이 든적도 있었다
6살 무렵인 것으로 생각한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의 살림을 꺼내가고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길목에서 나는 망연하게 서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불로 동네 매상하려고 내놓은 쌀을 다태워 모든 전답과 살림을 팔아 빚을 갚아야하는 대대적인 사건의 시기였다
부자의 상징인 동네 한복판 기왓집에서 동네 가장 위에 있는 쓰러져가는 슬레트 집으로의 이사 후 엄마의 장사가 시작되었다
5년 가량 살았던 이 슬레트 집에서의 기억도 많다
그 시절 귀한 설탕을 몰래 한숟가락 퍼 먹다가 바로 위 오빠에게 맞은 것
오빠와 놀다 오빠의 이불말이로 숨이 막혀 죽을 뻔한 일
큰 달력을 뒤집어 이웃집 아주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이가 후두둑떨어지던 소리
학교에 대변을 담아가야 하는데 대변이 없어 마당 한구석에서 식구들이 마루에 앉아 쳐다보는 가운데 배변했던 모습
나무마루 사이에서 지네가 나와 기어가던 40여개의 다리들
전기가 안 들어와 호롱불 켜고 살다가 전기가 들어왔을 때의 유레카
껌을 씹다 다음날 다시 씹으려고 벽에 붙여놓고 다음날 벽지와 함깨 뜯긴 딱딱해진 껌을 다시 씹었던 기억
옆집에 놀러가면 원기소 냄새가 그리 고소하게 나 그 냄새가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시절
마땅한 속옷도 없어 반바지만 입었던 일들이 가장 가난했던 초등학교 1학년 전후의 기억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지원을 받아 집을지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 지은 집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말괄량이였고 친구들과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문제는 중학교를 읍내로 나가면서부터 일 것이다
여자 중학교 교문에 들어섰는데 입학식 날 교정에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을 보며 기가 죽었나 보다
한 반 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우수상을 받고 졸업하여 읍내 중학교를 가보니 한 학년에 7반까지 있는 것도 놀라웠고 그곳에는 나보다 훨씬 야무지고 공부잘 한 애들이 많았다
비오는 날에는 천으로 된 신발이 금방 젖어 양말이 축축한 정도를 지나 교실 바닥에 선명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에 반해
금은방집 무남독녀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도 비 한방울 맞지 않는 뽀송뽀송한 모습이 경이로웠다
한참 만에 오는 버스도 언제나 만원이었고 사람들의 발 위에 발이 있는 버스도 제때 타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나름 사춘기를 겪으며 가난을 알아간 것일까?
농사만으로는 집에 돈이 부족하여 엄마는 여전히 야채를 내다 팔고 장사하느라 거의 집에 없었다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데 반찬이 없어 김치 꽁지를 싸간적도 있었던 내게 주어진 집안 일은 버거웠다
조용하고 얌전한 성향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눈에 별로 띄지 않았고 묵묵히 주어진 일과 공부만 하는아이였다
오빠들만 셋인 집안에는 교과서이외의 책은 없어 대화의 창구도 없었다
읍내를 벗어나 고등학교 진학을 시내로 가고자 요청했으나 유학을 보낼 돈이 없어 읍내의 여고로 지원하였다
대학도 보내주기 힘들다는 부모님께 단식으로 저항하면서 어렵게 결정해 준 부모님 덕에 대학진학을 할 수 있었다
내가 10대에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나는 제대로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나의 가난을 그냥 받아들였고 진지하게 나의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삶이 주어진 대로 살아갔고 주변의 환경이 바뀔때마다 의지처가 필요했다
10대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부모님을 떠나 대학에 가서는 바로 남자친구를 만들어 둘이 하나를 이루려 애썼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시기에 내가 책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10대에 고민하고 얻어야 할 과업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 책을 읽고 길잡이를 찾았으면 좋았겠다
책을 통해 사고하고 사유하였더라면 혼자 사회에 나갔을때 덜 혼란스러웠을텐데.
내가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아이들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책 사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는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 홀로서기를 당당히 할것이다
방법을 몰라 당황하지 않고 피하거나 눈 돌리지 않고 나의 10대 과업을 제대로 이루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