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외에 나가 있는 아들이 언젠가 내게 이야기 좀 하자고 요청을 해 왔다
대학 자퇴를 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한 후였다
무슨 선포를 하려고 이럴까? 슬며시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식사를 했다
아들은 대충인것 같지만 타인의 감정 변화나 행동에 민감하고 따뜻한 성격이다
특히 엄마에 있어서 더욱이 감정을 더 살피는 아이다.
둘이 식사를 하면서 아들이 꺼낸 말은 "엄마. 엄마가 살면서 아빠 때문에 힘들었지요. 엄마가 힘들어서 숨죽여 울 때 그 때 그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더 힘들었어요. 엄마가 힘들어도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져서 더 컴퓨터에 몰입했어요"
이런 내용들이었다
깜짝 놀랐다
아들은 엄마의 짐을 덜어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며 자책을 많이 했나 보다
엄마의 감정을 오롯이 아들에게 전달시킨 엄마였다니
"그래?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마음 아프고 힘들고 미워했던 것은 엄마 문제였는데 네 문제가 아니었는데..."
나는 아들이 엄마와 동일시하면서 아빠를 미워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울고 산 세월이 얼마였을까?
내가 숨죽여 울 때 아들은 그 분위기를 다 알고 있었구나
그 횟수만큼 사춘기 시절 아들의 마음을 파헤쳐놨구나 싶어 더 마음이 아팠다
이런 대화를 몇번 더 가졌다
아들은 상담을 통해서 그리고 신앙을 통해서 엄마 아빠의 문제가 본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아갔고 원가족의 문제에서 자신을 분리해 나갔다
어제 딸과 식사를 하였다
딸에게 용서를 빌고자 내가 요청한 것이다
어릴 적 딸에게 사랑한다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한 것과 초등학생 때 아빠 닮은 딸에게 엄마를 힘들게 할 때마다 심하게 때린 것, 아빠에게 가라고 했던 말들, 안아달라고 할 때도 내 자신이 지쳐 많이 안아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했었다고 이야기 했다
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엄마, 나 엄마한테 맞은 것 기억 안 나지만 내가 맞을 짓을 했겠지. 내가 엄마 돈을 얼마나 많이 훔쳤는데. 그 때 엄마가 엄하게 잡아주지 않았으면 나는 대도가 되어있을지도 몰랐어"
"아빠한테 가라고 했을 때도 가라면 못 갈까 봐? 그러고 말았는데"
우리 둘은 한참을 웃었다
내가 생각하며 미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딸은 엄마 아빠에 대한 고등학생 때의 기억도 전혀 달랐다
"우리 학교에서 엄마아빠 사이좋은사람 손들어봐 할 때 나혼자 손 들었잖아. 한번도 싸우지 않고 언제나 손잡고 다니시고 천생연분이라고 내가 발표했어"
딸은 예전부터 부부사이 좋은 금슬좋은 부모님을 둬서 자신은 다이아몬드 수저였다고 언제나 말했었다
아들과 딸의 전혀 다른 반응은 무엇일까?
에디푸스콤플렉스인가?
아들은 엄마와 동일시되어 엄마의 감정을 오롯이 받아냄으로 너무나 힘든 시절을 거쳐 이제야 분리가 되었는데 딸은 영향을 덜 받았다
엄마가 자신에게 한 것들은 사랑의 매였고 본인이 감당 가능한 것이었다 한다
진짜 딸이 힘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대학생 때 아빠가 "너 스스로 살 안 빼면 단식원에 집어 넣는다"하며 단식원을 알아보고 대드는 딸의 핸드폰을 정지시키고 집 나가라고 대판 싸웠을 때 엄마가 "엄마 너무 힘들다 너가 한번만 져주면 안 되겠니?" 했을 때였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를 편드는 그 때가 가장 상처였다고 했다
살찐 여자를 제일 혐오하는 아빠와 성격도 아빠 닮은 딸과의 전쟁 사이에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처럼 질기게도 오래 갔다
이야기를 하면서 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불의하다고 생각하면 맞붙는 것이 아니라 회피해 버리고 돌아가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불편하고 감당하기 힘드니까 그 길을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그 성향을 민감한 아들은 모두 흡수하며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고 성장했다면
딸은 자기와 전혀 다른 엄마의 문제로 인식하고 훨씬 건강하게 자란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아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고 아들이 뭐한다고 하면 거절을 못했던걸까
아들이 키가 작아 소심해지고 자신감이 없어할 때 다리 늘리는 수술을 한다고 통보를 했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일하며 돈을 모아나갔고 수술하는 서울의 병원을 알아보았다
언제나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큰 엄마는 승낙을 하였고 아빠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이때도 나는 서로 말다툼하고 시끄러워지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이를 계기로 가족 심리상담을 받아보았고 남편의 적극적인 아들과의 대화로 결국은 아들이 수술을 포기하였다
아들은 그 즈음부터 신앙의 길로 들어섰고 그 이후 신앙 안에서 심리상담을 스스로 해가며 지금은 완전히 스스로를 독립시켰다
이제야 생각하니 엄마에게서 완전 분리를 하기위해 멀리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아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존재였다는 것을 나도 희마하게나마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아들에게 언제나 미안했고 부탁도 잘 안하지만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거절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잘 알아가고 가족들의 성향이 뚜렷이 보이고 정리가 된다
지금은 모든 가족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있다
아들도 상담이든 신앙의 힘으로든 엄마와의 분리를 했고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남편은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이고 객관적인 성향인 것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고 엄마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도 엄마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아는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중심을 잘 잡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가장 많이 흔들렸고 부러지지 않으려고 엄청 애쓰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거였어
나에게 한마디 해준다
"지금까지 고생했어. 너는 훌륭해. 이렇게 잘 살아준 것을 칭친해"
남 걱정하지 말고 나나 잘 살자. 그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