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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이야기(사례 17)

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27)

by 운상

전생의 버릇대로 출가승이 된 허정승 이야기(17)


일타 스님 법문 중에서


조선 중기 한양에 허정승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천하일색인 애첩 박 씨가 있었다. 애첩은 허정승에게 갖은 봉사를 하였고, 허정승도 애첩 박 씨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잠시도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였다.


어느 해 봄, 나라에서 정승 판서들만이 모이는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열려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그토록 사랑했던 애첩 박 씨가 사라지고 없었다. 하인들을 불러 간 곳을 물었더니, 그들은 너무나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께 웬 숯장사가 숯을 팔러 왔었는데, 둘이서 뭐라고 몇 마디 주고받더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허정승은 어이가 없었지만, 애첩을 잊을 수 없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였다. 그러나 애첩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허정승의 머리에는 오직 도망간 애첩 생각밖에 없었다. 벼슬도 정승도 다 그만두고라도 애첩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침내 허정승은 조정에 들어가 사직서를 내고 애첩을 찾아 나섰다. 몇 년에 걸쳐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었지만 애첩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그는 오대산 깊은 산골에 이르게 되었고, 바위에 걸터앉아 아픈 다리를 쉬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길 저쪽에서 웬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애첩, 바로 그 애첩이었다. 그는 너무나 기뻐 애첩에게로 달려갔지만, 애첩은 조금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허정승.png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거는 허정승


“당신이 떠난 후 정승 자리까지 마다하고 팔도강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소. 이날 이때까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살았다오. 과거지사는 따지지 않을 테니 다시 한양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나 애첩은 싫다고 하였다.



허정승 : 그 숯 굽는 이가 나보다 더 좋소?

애 첩 : 좋습니다.


허정승 : 나보다 무엇이 더 좋다는 말이오?

애 첩 : 하여간 저는 그이가 좋습니다.


허정승 : 진정 돌아가지 않겠소?

애 첩 : 절대로 안 갑니다.



절대로 안 간다는 말을 남기고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허정승은 너무나 허무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중이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을 참선하며 그토록 사랑했던 애첩이 떠나간 까닭을 생각하였다.



“왜 그녀가 나를 떠나갔을까? 왜? 도대체 왜?



하루는 이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 아픈 줄도 모르고 애첩이 떠나간 까닭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처는 이미 아물었고 잔디밭에는 피가 엉겨 있었다.



그 순간, 그토록 궁금해했던 자기와 애첩과의 과거 인연이 확연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허정승의 전생은 참선하던 승려였다. 어느 날 그의 몸에 이 한 마리가 붙었다. 그는 몸이 가려웠지만 철저한 수행승답게 피를 제공할 뿐 이를 잡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양을 받기 위해 신도 집에 초대되어 갔는데, 그날따라 이가 유난히 스님의 몸을 가렵게 만들었다. 스님은 몰래 그 이를 잡아 마루 옆에 있는 복실개의 몸에 놓았고, 그 이는 복실개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살다가 죽었다.



그 인연이 금생에 와서 허정승과 애첩과 숯장사의 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는 애첩이 되어, 전생의 수행한 공덕으로 높은 벼슬을 한 허정승에게 찾아와 수년간을 지극히 모셨고, 인연이 다하지 복실개의 후신인 숯장사를 따라가서 살게 되었던 것이며, 자신은 전생의 살아온 버릇대로 출가승이 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이러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좋은 일이거나 궂은일이거나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회의에 빠져들고 괴로워한다.


“왜 나는 이래야만 하는가?”


하지만‘나’또한‘나’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쁘고 슬픈 일들 모두가 ‘나’로 말미암아(因) 생겨난 일이고, 내가 관련되어(緣) 일어난 일들이니 어찌하랴. 그러므로 인연법에 비추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잘 대치하여야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나와 남을 동시에 생각하는 삶. 즉 서로 도우며 상생하는 삶을 살아야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이익이 되고 남도 이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 善의 기운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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