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마트에서 고사리를 한 묶음 샀는데 양이 넘치게 많다. 고사리나물, 고사리 육개장, 고사리 전, 고사리 생선찜 등 고사리 요리를 떠올린다. 평소 먹던 스타일 말고 특별한 요리를 먹고 싶다.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자!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해 먹으면 반찬으로 먹는 거보다 고사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 새우나 조개 대신 새송이버섯을 잘라 구워 곁들이면 고기 없이 고기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완벽한 채식 요리가 된다.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 땐 ‘적당히’라는 단어를 잊고 나도 모르게 한껏 큰손이 된다. 이 맛에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거지. 6월에 담근 매실 장아찌를 곁들여 먹었다. 날이 무더워 예정보다 빠르게 맛이 들었다. 매실 장아찌와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의 이색 조합이지만 매실 장아찌의 새콤달콤함이 올리브유와 마늘 향을 입은 고사리와 제법 어울린다.
음식을 대접하는 입장에선 언제나 먹는 사람의 반응을 살필 수밖에 없다. 맛있게 먹어주면 감사하다. 다행히, 효자 아들 입맛에 매우 맞는가 보았다. 케이도, 금비도 맛있게 먹는다. 무언가 요리를 해주었을 때 몹시 맛있으면 식구들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있다. “팔아도 되겠는걸.” 또는 “특허 내.” 내 요리는 식구들의 입맛에 특화되어 있고, 있는 식재료를 되는대로 활용하는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 이 맛에 결혼
낮잠을 자지 않는 대신 케이와 밖으로 나가는 날엔 달달한 음료를 마시거나, 달콤한 빵을 먹는다. 낮잠을 자서 체중이 늘거나, 고칼로리를 섭취해서 체중이 느는 것이나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행동은 아니다. 낮잠을 자서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하는 것도 좋고 케이와 드라이브를 하며 예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하는 여유도 좋다. 이 맛에 결혼하는 거 아니겠어? 일주일 내내 아침에 헤어졌다 밤에 잠깐 만난다. 주말에라도 데이트해야지. 이 맛에 사는 거 아니겠어? 결혼이 별건가, 연인들이 함께 사는 거지. 연애할 때처럼.
◎ 오후, 카페 단상
주말이 되면 케이와 종종 카페에 간다. 주로 서울 및 서울 근교의 카페를 찾아다닌다. 고맙게도 케이가 카페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 “사모님, 오늘 소개해 드릴 최고의 카페는 이곳입니다. 커피 맛은 어떠신지요?” 케이가 안내하는 대로 낯선 카페의 문을 연다. 주로 인터넷에 올린 업체 정보와 카페 이미지, 리뷰들을 보고 선정하는 것 같은데 때로는 예상보다 별로였고, 때로는 예상대로였고, 때로는 기대보다 나았다. 아무리 인터넷에 정보가 쏟아져도 직접 가보고, 직접 커피를 맛보고, 직접 서비스를 체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개인의 리뷰가 있는 법이다.
오늘 들른 카페는 잘 가꾼 정원, 모던하면서 세련된 건물 외관, ‘재벌 집 막내아들’이 연상되었다. 요즘 카페는 대게 H 빔, 샌드위치 패널로 빠르게 올린 건물에 들어앉은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카페는 벽돌 건물을 지은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커피잔에 커피 명함을 세워 서빙하는 정성, 넓은 공간을 놀리는 여유로운 테이블 배치, 요즘 서울 근교 카페, 대형 베이커리 카페 커피 6-7천 원 하는 데 비해 이곳 아메리카노는 믿을 수 없는 가격, 3천8백 원. 커피마다 이름이 있어 커피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카페를 차린 사장은 어떤 향을 좋아할까, 하는 호기심에 ‘사장이 매일 마시려고 만든 블렌딩’을 주문했다.
“사장님 이상해. 돈 벌 마음이 없나 봐.”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일층에 자리를 잡았다.
“저기 저 나무를 당기면 벽과 나무 사이에 테이블 두 개는 들어갈 수 있겠어. 아니면 나무를 계단 옆으로 옮겨서 테이블을 더 놓던가.”
“여기에도 테이블 세 개는 더 놓을 수 있겠는데.”
“이층에도 테이블 몇 개는 더 놓을 수 있겠던데.”
“커피가 3천8백 원이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직원도 여럿 보이던데.”
“적자겠는걸.”
“강아지에게도 문을 열어놓았어. 확실히, 뭔가, 달라.”
“재벌 집 막내아들이 낭만으로 하는 커피집인가 봐.”
멋대로 상상한다.
“놀면 뭐 하니까.”
멋대로 상상하곤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커피네.”
시트러스 블랙을 한 모금 마신 뒤 함께 구입한 생크림 빵 한 조각을 떼내 입에 넣었다.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달지 않고 감탄 나오는 캐러멜 생크림 빵이야. 이렇게 맛있는 크림이라니. 집에 갈 때 포장해가자. 애들이 좋아하겠어.”
매장에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가들이 많이 보인다. 애견 동반 카페라 강아지도 많이 보인다. 아가들과 강아지들 중 누가 더 귀여운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둘 다 귀여움을 잔뜩 입었다. ‘여러분, 모두 나를 사랑해 주세요.’
돌이 막 지난 듯 아장아장 걷는 여자 아가가 여자 화장실 앞에서 아빠에게 들어가자고 작고 고사리 같은 손을 얼굴 위로 올려 까딱까딱하며 아빠더러 오라고 손짓한다.
“아빠는 거기 못 가.”
젊은 아빠가 대답한다. 아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케이와 나는 아빠를 사랑해 마지않는 자그마한 아가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딱 저맘때 금비 생각이 난다.
“저 아가는 몇 살쯤 되었어?”
케이가 묻는다.
“세 살쯤.”
망설임 없이 내가 대답한다.
“금비도 저랬는데. 진짜 귀여웠지.”
“자기가 많이 안아줬지.”
“내 껌딱지처럼 굴었지.”
“벌써 다 커버렸네.”
“시간 정말 빨리 가네.”
◎ 커피 한 잔이 담은 행복
카페에는 바람을 쐬러 나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금비와 효자 아들을 다 키운 나와 케이에게 젊은 부부는 나이가 어린 부부가 아니라 막 결혼한 부부, 어린 아가들을 키우는 부부다.
카페의 남편들은 상상도 못한다. 지금 아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남편과 마주 앉아, 또는 나란히 앉아 커피 한잔하는 거 만으로도 아내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일주일 동안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야근한다고 늦게 들어오고, 서운했다가도, 미웠다가도,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고 행복한지. 연애할 때처럼 똑같아서, 연애의 연장일 뿐, 아이가 생겼을 뿐, 연애 때 같은 오늘.
고작 카페에 앉아 있는 것뿐인데!
겨우 커피 한잔하는 것뿐인데!
남편들은 상상도 안 가겠지만 남편과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의 데이트하는 거만으로도 아내들은 행복하다. 게다가 사랑스러운 아가도 곁에 있으니.
결혼하고 이십 년쯤 지나면 배우자와 원수 안 되고 잘 지내고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감사하게 된다.
명품 사는 사람도 안 부럽고
골프 잘 치는 사랑도 안 부럽고
필드 나가는 사람도 안 부럽고
자식이 좋은 대학 간 것도 안 부럽다.
배우자랑 맛있는 거 먹고, 짝꿍처럼 함께 잘 다니고,단짝처럼 잘 지내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배우자가 나를 보고 웃어주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다 가진 거지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저 아기 엄마들 몹시 행복하겠네. 저 아기 아빠들 부인을 많이 위하네.”
오뉴월 초록 나무 같은 젊은 부부의 모습 위로 우리의 젊은 부부 시절이 자동으로 오버랩된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아내에게 바람 쐬게 해주고 싶어 주말마다 밖으로 나가 좋은 거 구경시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 일주일 내내 힘들었을 배우자에게 기분 전환 시켜주고 싶은 살뜰한 마음, 깊은 배려. 저들은 행복할 것이다.
◎ 젊은 부부, 잘 지내길 바라.
앞으로 저 부부가 어떤 과정을 지나 이십 년 차 부부가 될지 어느 정도는 짐작되는 인간사. 비 온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길 바란다. 날이 좋지 않다고 울지 말고 서로의 손을 잡고 따뜻한 온기에 기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부부를 위해, 아가를 위해, 나지막이 진심을 담아 기도하듯 바라보았다.
“저 젊은 부부 행복했으면 좋겠네.”
남자들은 잘 모른다. 아내들을 행복하게 하는 건 뜻밖에 아주 작고 사소한 마음 씀이라는 사실을. 아내들이 작은 거 하나로도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을 서로 알아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끈은 더욱 견고해진다.
(혹시, 어느 카페에서 어떤 아저씨랑 아줌마가 물끄러미 보고 있거든 오해하지 말아 주시길. 예뻐서,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뺏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