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신호 대기에 걸려 대기하던 중 옥외 광고 게시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하나에 눈길이 갔다.
‘누워만 있어도 한 달에 5kg이 빠집니다.’
누워있는데 살 빠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나는 SF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붉은 광선이 새어 나오는 캡슐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사람 이미지를 그려봤다. 혹은 3D 안경을 쓰고선 리클라이너에 몸을 기댄 채 직원이 건네는 음료를 마시고 잠이 드는 사람을 그려봤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살이 빠진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납득을 해 보자, 납득을 해 보자...)
가만히 누워서 살을 빼겠다는 건 또 무슨 마음인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이해해 보자, 이해해 보자...)
가만히 누워서 살을 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나의 고지식한 머리에 놀란다. 누워서 살을 뺄 수는 없을 거라는 쪽으로 머리가 굳어 버려서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더 이상 유연한 사고는 할 수 없단 말인가.,.)
누워만 있어도 살이 빠진다는 말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굳이 하나 갖다 붙이자면 저녁 금식하고 자고 일어나면 체중이 줄어있기는 하다. 저녁을 굶고 배가 고픈 상태에서 잠이 들면 누워만 있어도 살이 빠지기는 한다. 진짜로.
자는 동안에도 신체는 기억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지친 팔다리를 풀어주고, 면역력을 끌어올리고, 체력을 회복하는 신체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도 저녁 금식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저녁 금식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며 ‘누워만 있어도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홍보물에 현혹된다. 쉽게 찌는 것에 비해 살을 빼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쉽게 빼면 요요도 쉽게 온다.
다이어트의 목적은 단 일주일, 단 한 달의 날씬함이 아니라 평생 건강한 삶을 지속하는 것이다. 평생 누워있을 거 아니라면, 평생 다이어트 프로그램 이용할 거 아니라면 스스로 살이 빠지는 습관에 젖어들어야 한다.
또 다른 다이어트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8kg 안 빠지면 전액 환불’
현수막을 보면서 생각했다. ‘8kg 빼면 전액 환불.’이라고 고치면 더 열심히 뺄 텐데.
◎ 러닝머신(트레드밀) 적응 중
러닝머신(런닝머신, 트레드밀)은 19세기 영국에서 죄수들의 형벌 도구로 사용되었다.
어쩐지.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기 싫더라니. 몸에 좋은 건 알지만, 러닝머신 위에서 한 시간만 걷거나 뛰어도 금방 살이 쭉 빠질 것 같기는 하지만, 지루하더라니. 기합받는 것 같더라니.
평지가 아닌 움직이는 러닝머신 위를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걷는 자세가 잘못된 건지, 운동을 하지 않다 운동해서 다리가 적응하는 과정이었는지, 러닝머신을 하고 온 처음 며칠은 무릎이 조금 욱신거렸다. 러닝 머신을 걸을 때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도 받았다.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다 몸에 무리가 가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얼마큼 많이 걷느냐보다, 얼마나 칼로리를 소모하느냐보다 천천히 걷더라도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발바닥이 뜨겁지 않도록 걷는 자세에 신경 쓰며 걷는다. 이제는 다리가 단련이 됐는지 무릎이 욱신거리지도 않고 발바닥이 뜨겁지도 않다. 요즘은 러닝머신의 속도를 조금 더 올릴 수 있고, 조금 더 걸을 수 있고, 살짝 뛸 수도 있고, 러닝머신을 마치고 자전거도 조금 더 탈 수 있다.
◎ 나는 걷는 사람
나는 헬스장에서 운동하기보다 공원이나 산을 다니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그렇다. 눈 오는 거, 비 내리는 거, 바람 부는 거, 햇빛이 쨍한 거, 구름의 모양 변화 다 좋아한다. 걸을 때 주위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더라도 비바람 맞고 차가운 바람 맞더라도 설설 걷는 것을 좋아한다.
◎ 걷기의 장점
- 피부 톤이 밝아진다. ---> 땀을 흘리고, 노폐물이 빠지고, 수분 섭취를 많이 해서 그런 듯.
- 운동 후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 변비 개선, 얼굴 톤 화사해짐
- 다리 근육이 발달한다. ...>약간의 파워워킹이 좋다.
- 군살이 빠진다. --->뱃살도 들어간다.
- 기초대사량이 올라간다.
- 부작용이 적다.
- 정신, 머리가 맑아진다.
- 신체 에너지, 영혼의 에너지가 향상된다.
- 생각이 정리된다.
-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다.
-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밖에서 뛰어놀던 습성이 있고, 체육관보다는 운동장 체육 수업이 익숙한 나는 벽보고 운동하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운동하러 끌려온 것 같은 지루한 기분을 느낀다.(다니던 헬스장의 폐업으로 새로 옮겨지게 된 A 헬스장도 전면 통창으로 운동하면서 밖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지루함과 별개로 헬스장에 가면 실내 특유의 답답함이 있다. 고급 공기 청정기 몇 대를 돌려도 느껴지는 갑갑함이 있다. 역시 날이 좀 춥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눈이 오더라도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이 좋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공기질이 많이 나빠졌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공기질을 확인한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날이 덥건, 춥건 상관없는데 공기질만큼은 무척 우려스럽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뿐 아니라 매캐한 냄새까지 맡아진다. 미세먼지 심한 날 마스크를 쓰고 걷다 이런 확신이 들었다. ‘백세시대라지만 백 살까지는 못 살겠군. 확실히.’
뿐만 아니라,
한여름 더위 기세가 매년 예사롭지 않다. 낮 최고 기온이 쭉쭉 올라간다. 유럽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도가 넘었다는 뉴스, 인도에서 더위로 시민들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본다. 한국도 예외 없이 한 여름 살인적인 무더위가 며칠씩 이어진다.
운동하러 나갈까, 하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운동하러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피부를 녹일 듯한 무더위, 십 분만 땡볕 아래 서있다간 쓰러질 것 같은 무더위 아래를 걷는 것은 피할 수밖에 없다. 차선의 선택으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 헬스장 다녀서 좋은 점
헬스장의 기구들이 좋은 기구인지, 최신인지도 모르는 기구 까막눈, 공원에 있는 기구보단 좋은 건 알겠는 정도. 불만족 없이 다니는 헬스장 장점을 나열해 본다.
1. 칼로리 소모를 확인할 수 있다.
2. 덥든 춥든 날씨와 상관없이 운동할 수 있다
3. 나도 모르는 새 뇌를 망가뜨린다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운동할 수 있다.
3 신나는 음악에 맞춰 운동한다.
4. 여름에 시원하게 운동한다.
5.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손상을 줄일 수 있다.
6. 샤워 시설이 있다.
8. 열심히 체력 단련을 하는 다른 회원님들을 보며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9. 기타 등등.
◎ 홈트보다 헬스장이 좋은 이유
(홈트의 장점도 있지만,)
- 층간 소음 문제에서 자유롭다.
윗집에서 러닝머신을 하면 아랫집에 웅, 또는 미세한 쿵쿵 쿵쿵, 같은 진동이 울리기도 한다. 특히 출근 전 새벽이나 퇴근 후 밤에 러닝머신을 뛰면 아랫집은 생각보다 괴롭다.
- 집에서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기부여와 함께 땀 흘리는 행동에 대해 동질감이 들기도 한다.
- 트레이너 같은 신체 활동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GX 프로그램(요가, 필라테스, 줌바, 라인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집에서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도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녁 먹고, 티브이 보면서 약간의 스트레칭 만으로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집안 일과 스트레칭만으로는 부족하다는걸. 더 움직여야한다는걸. 더 운동해야 한다는걸.
누워만 있으면 근육이 약해진다. 근육은 사용할수록 강해진다. 근육이 약해지면 기초 대사량이 낮아진다. 기초 대사량이 낮으면 조금 먹어도, 군것질을 한 입만 먹어도, 달달한 음료를 한 잔만 마셔도 체중이 쉽게 줄지 않는다.
기초 대사량이 낮은 사람은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려주고, 일상의 활동량을 늘려 기초대사량을 높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기초 대사량은 올라가지 않는다. 누워만 있으면 기초대사량은 떨어진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면 살이 쉽게 찌고, 살이 잘 빠지지 않고, 살이 빠졌다 하더라도 조금만 먹어도 다시 찐다.
(어쩌면, 정말로 ‘누워만 있어도 살 빠지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달나라도 가고,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는 시대에 ‘누워서 살 빼는 것’쯤이야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