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루즈 빅 브런치, 버섯 크림 리조또, 바질 토마토, 레몬 미니 파운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운동 1. 도보 30분
운동 2. 모닝 스트레칭(체조)
아침 공복 체중.. 64.2kg
◩ 8월 14일 수요일
간다, 단탄지 아침:
부대찌개 밥,
아이스 아메리카노
간다, 단탄지 점심:
새우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with 버터구이 식빵),
매실 장아찌
간다, 단탄지 저녁: 안 먹음
부대찌개 밥
새우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with 버터구이 식빵), 매실 장아찌
운동 1. 도보 30분
운동 2. 모닝 스트레칭(체조)
운동 3. 헬스
러닝머신 30분, 152kcal
아령(덤벨) L3kg / R3kg 10회 3세트 + 4세트
자전거 15분, 188kcal
파워 벨트 마사지
거꾸리
*340kcal
아침 공복 체중.. 63.6kg
◎ 아들, 많이 먹어.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가 꽤 입맛에 맞았는지 효자 아들이 점심으로 고사리 알리오 올리오를 또 요청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정에서 식사를 담당하는 입장으로서 식단을 골고루 짜는 것은 상당한 정성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메뉴만 정해지면 그다음은 뚝딱.
오늘 고사리 알리오는 새송이버섯 대신 새우를 듬뿍 담았다. 파스타 면도 푸짐하게 삶았다. 파스타집 일 인분의 두 배 정도 되는 양을 접시에 쌓듯이 담았다.(파스타 집엔 어째서 곱빼기가 없지?)
아들, 많이 먹어.
‘파스타집 일 인분 가지고는 배도 안 차지? 많이 먹어. 잘 먹어야 크지.(키 클 나이 지났지만,) 어쨌든잘 먹어. 잘 먹고 밖에 나가 놀아. 실컷 뛰어놀아.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남한테 피해 주지는 말고,)
내가 너보다 삼십 년쯤 먼저 살아보니까 하고 싶은 거 하는 때가 있더라. 하고 싶은 거 해보는 게 좋더라.(남한테 못되게 굴지 말고,)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지만 네 나이에 하는 거랑 기분이 다르더라. 배우는 것도 다르더라.
하는 일이 매번 잘될 수는 없겠지. 성공보단 실패가 더 많을 지도 모르지만 실패에서도 배움이 있다면, 어쩌면 평생 큰 성공은 없을 지도 모르지만 성공 없는 삶이라도 배움이 있다면, 이왕 배움이 있다면, 조금 더 일찍 배움을 얻어 후일의 성공을 기약하고, 혹시 모를 최후의 실패를 대비하는 것이 좋더라.
레시피마다 개성이 묻어나듯, 음식마다 맛이 다르듯, 유연하게 생각해. 보드라운 캐시미어 같은 유연함을 입고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변하는 세상에서 너 자신을 보호해. 때론 유연함을 다른 사람의 어깨에 덮어 줘.
다정한 호랑이처럼 살아. 너의 다정함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례함을 세 번, 네 번, 허락하지 마. 실망하지 마. 곧 다시 시작하고, 다시 걸어. 끊임없이 실망스러워도 끊임없이 실망하지 마. 실망에 갇혀 희망을 버리지 마. 이 세상의 어떤 존재로도 실망할 것이 없어. 간절하지 말아. 설령 네 부모의 병환이 깊다 해도 간절하지 말아.
관조하면서, 휩쓸리지 않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홀홀, 살아. 고요한 새벽 동틀 무렵의 들숨 날숨처럼 잔잔한 기도하듯 살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마치 너와 나의 만남이 그러하듯.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많이 먹어.
◉ 엄마는 소식 좌였을까?
엄마에게 먹는 것과 관련해서 별명을 하나 붙여준다면 ‘먹어먹어’다.
잘 먹고 있는 거 보면서도, 많이 먹고 있는 거 보면서도, 방금 두 그릇 먹는 거 봤으면서도, 배부르다고 하는 거 들었으면서도, 엄마는 나만 보면 계속 ‘먹어먹어’하신다.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누가 함께 있어도 엄마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먹어먹어’하신다.
“내가 알아서 잘 먹을 거니까 ‘먹어’ 소리 하지 말고 엄마 많이 드세요.” 어금니 꽉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엄포를 놓으면 엄마는 알았다,는 대답 대신 몇 초간 있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더 먹어.”
우리 엄마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엄마들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더 먹어’ 때문에 밥 먹다 엄마랑 싸웠다는 지인 얘기를 들으며 “우리 엄마도 그래. 나도 욱했어.”라고 하곤 함께 웃어버렸다. 엄마들은 왜 그러는 걸까.
엄마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셨다. 엄마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젖이 돌지 않아 빈 젖만 빠는 아기에게 밥 지을 때 보글보글 끓는 밥 물을 떠서 조금씩 먹여 살렸다고 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고, ‘먹을 것’은 뭐든 귀했던 시절을 살아온 엄마가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일 거라는 걸 철이 들고나서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 배경 때문인 건지, 타고난 건지 엄마는 음식 할 때만큼은 큰손이었다.
“엄마는 음식 모자란 건 싫더라.”
엄마는 명절이면 다음 명절 때까지 먹을 만큼 송편을 빚어두었다. 잡채며 전을 넉넉히 만들어 명절이 끝나고도 명절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처럼 명절 음식을 해치우듯 먹어 치우기도 했다. 밥이며 반찬들도 넉넉하게 준비해서 한 번씩 큰 볼에 밥과 반찬과 고추장을 넣고 마구 비벼 먹곤 했는데, 그 비빔밥조차도 늘 넉넉하게 담아서 언제나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엄마, 더는 못 먹겠어.”라고 말하면 “뭘 얼마나 먹었다고 그러니.”라고 말하며 “더 먹어. 한 숟가락만 더 먹어.”라고 비빔밥을 들이미셨다. 엄마는 종종 계란을 한판씩 삶아 오후 간식으로 주셨다. “더 먹어.” 엄마가 햐얀 삶은 계란을 들이미는 대로 받아먹어서 나는 삶은 계란은 한 번에 대여섯 개씩은 먹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많이 드시지 못했다. 내가 팍팍 떠먹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실 뿐이었다.
타고난 소식 좌인지 전쟁 직후의 가난한 나라에서 성장한 탓에 뱃구레가 작아진 건지 ‘먹어먹어’하면서 엄마는 정작 본인은 많이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맛있는 반찬 앞에서도 밥은 두 공기를 드시는 적이 없다. 맛집에 가서도 몇 숟가락 드시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더 먹어, 더 먹어’만 하신다. 고깃집에 가서도 고기 몇 점 잡수시고는 수저를 내려놓고 ‘더 먹어, 더 먹어’라고만 하신다.
모둠 회를 두세 점 맛만 보고 금비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잘 익은 고기를 금비 앞 접시에 두 점, 세 점 쌓아준다. 금비 입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
손바닥만큼 나오는 파스타로 배가 차지 않는 효자 아들에게 더 주기 위해 파스타를 남겼다. 배가 차지 않을 효자 아들에게 피자를 내밀었다. 나는 다이어트 돼서 좋고, 아이들은 잘 먹어 좋은 거라고, 일석이조라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라고, 위안하면서.
햄버거 한 개로는 배가 찰리 없는 효자 아들을 위해 내 햄버거를 남겨 주었다.
“더 먹어.”
효자 아들이 부담스러울 까 봐 “엄마 진짜 배불러.”라고 엄살을 떤다. 효자 아들이 말없이 햄버거를 받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무엇보다도 가슴이 벅차다. 어쩌면 잘 먹는 나 때문에 엄마는 양보가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아빠 월급이 좀, 빠듯하긴 했지.)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불리 드시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는 엄마를 보면서, 정작 엄마는 잘 잡수지도 않으시면서 “먹어, 먹어” 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자식 먹인다고 안 먹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었는데, 자식 마음 속상하게 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었는데, 애들보다 내가 더 많이 먹을 거라고 큰소리쳤었는데, 엄마는 정말 소식 좌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