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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작소 Jun 27. 2023

일상이 주는 깨달음

소라껍데기 안 탈출


나는 작은 간판집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우울의 늪에 빠져있어선지 몰라도 불경기에 직장이 있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여겨야 하는데 그보다는 매시간이 고비의 연속이 곤 했다.

맞벌이를 안할 수 없는 사정이라는 걸 나도 안다.

나이도 있고 이곳을 그만둔다면 직장 구할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도 말이다. 작은 소라 껍데기에 움츠려서 바깥세상을 보기 겁내는 듯 속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온몸으로 퍼져갔지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사무실을 나가곤 했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잠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꿈속에서 나는 귀금속을 사기도 하고 평소에 안 하던 사치를 부리기도 해서 신기할 때도 있다.

집돌이 집순이인 남편과 나는 집에 차가 있어도 드라이브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당연히  만나는 지인들도 별로 없다. 주말에 다니던 교회도 최근 이사를 해서 몇 주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못 나갔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출근시간에 맞추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간판가게가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시는 곳인데 사모님과 같이 생각지도 못하게 외근 나갈 일이 생겼다. 사모님은 오토바이도 타실줄 아시고 사장님과 같이 현수막 시공도 하러 다니시며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시는 것처럼 아무튼 내가 보기엔 참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시다. 사모님이 모시는 오토바이 뒷자리는 처음 타봤다. 오토바이라..... 아빠가 모는 오토바이 몇 번 탄 적 있었던 거 말고는 여자분이 모는 오토바이를 타게 될 줄이야.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사모님 무서우니까 천천히 달리세요~”

내가 뒤에서 말하니 사모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내가 혼자 탔으면 훨씬 빨리 달렸을 텐데 천천히 가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며 오토바이가 멈추었을 때 “이거 배우려고 운동장에서 몇 바퀴를 뱅뱅 돌고 돌았는지 몰라요~”라고 하셨다.


사모님은 내년이면 환갑이시다. 주말이면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기르시고 모임에서 산에도 가시고 밤에는 인쇄기 출력하시면서 지인들과 틈틈이 술 한잔씩도 하시는 걸 포기 못하시는 분, 퇴근하시면 파김치를 담아다가 내게도 한 봉지씩 싸다 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모임도 많으시고 지인도 많으시고 활동적이신 사모님~평소에는 자주 뵈어서 몰랐는데 오늘 오토바이 타면서 새삼스레 사모님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도..... 퇴근하면서 그동안 뜸했던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안부도 묻고 그중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도 길게 했더랬다.

살다 보니라는 핑계로 잊고 사는 게 너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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