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에서 영화 <본 투비 블루>와 책 <쳇 베이커>를 읽고
무척 아름다운 영화예요.
외줄을 타본 적이 있다. 물론 카라비너 하나 로프에 매달아서 생명줄 걸려 있었지만, 신발을 신은 발가락 끝이나 바람 지나가는 코끝 숨 내뱉을 때마다 심장박동 소리가 빼곡이 가 닿았다. 눈을 뜨면 아득하고 감으면 앞이 선명했다. 천지가 위아래 바뀌어 나동그라지는 느낌. 내 한 몸뚱이가 떨어진 꽃잎(이라기엔 무겁지만) 바닥에 앉을 듯 말듯 제자리 찾지 못하는 불안한 존재였다. 내 나약함을 증명하는 순간순간마다 나는 내 생명을 의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신경을 집중했다.
쳇 베이커에겐 그곳이 마약, 그리고 그의 곁을 지켜주는 그녀(들)이었겠다. ‘불안한 존재’를 최근 영화에서 느꼈던 건 ‘버드맨(2014)’에서였다. 리건 톰슨은 한 물 간 유명세에 기대어 보다가, 뛰어넘어보려다가, 좌절하다가를 반복한다. 몰락하는 자신을 마주하는 방법이 건물에서 허공 위로 몸을 던지는 일이었다는, 처참하고 애처로운 영혼이라는 점에서 쳇 베이커와 닮았다.
그 전에 느낀 ‘불안한 존재’는 ‘실버라이닝플레이북(2013)’의 두 주인공이었다. 폭력전과자와 신경과민한 두 남녀가 모순투성이의 말과 뾰족한 행동 속에서 증명하고자 한 단 한 가지 진실은 ‘나’라는 존재였다. 망가진 턱 때문에 트럼펫 소리가 흐느끼듯 늘어져도 멈추지 않았던 연주 속에서 쳇 베이커의 강렬한 눈빛은 자신이라는 진실을 증명하고 싶은 거였을 거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과 쳇 베이커의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했냐는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프롤로그에서 마약에 찌든 그의 일생을 접하면서 마약 중독으로 고생했던 가수며 배우들을 떠올렸다. '마약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보내는 일말의 동정심을 쥐고 있어야겠다.' 그런데 9장을 펴자마자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이보게,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배에 오른다고 가정해보세. 그러면 그 배를 타고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고 싶을걸. 원하는 모든 걸 다 손에 넣으면서 말이야. 알겠나? 난 내가 원하니까 마약을 하는 거야.”
나는 그를 동정할 권리가 없었다. 그의 삶이었기에. 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이해 받을 필요도 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패고, 엄마도 패고, 사체는 유기하고, 아내 시켜 독일까지 가서 마약 운반하게 하고, 감옥에 가기 싫어 마약상을 경찰에 찌르고, 보복으로 앞니가 나가서 자신의 인생도 구렁텅으로 밀어넣고, 3만 군데의 구멍을 뚫어댄 남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이기를 알면서도 곧 부서질 듯하여 모든 이가 손톱을 물어 뜯는 불안함으로 지켜보게 만든 매력을 가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평생 충실히도 증명한 삶이었다.
‘그는 마약을 했지만 달콤한 연주를 했던 훌륭한 예술가였다’라든지, ‘그는 최고의 연주자였지만 마약으로 자신과 주변의 인생을 타락시킨 개객끼’였다든지 하는 가치판단을 하고자 하는 게 내가 설명 가능한 접근인가를 고민하고 결국은 내려놓게 했다.
‘쳇 베이커는 평생 졸라 오롯이 쳇 베이커였다’ 정도까지밖에 나는 그의 삶을 정의하지 못하겠다.
여섯 글자로 줄이면 개썅마이웨이.
2016.06.13.
독후감 400자도 쓸수록 성장한다는 트레바리의 홍보글을 보고 4년 전 독후감을 돌아보다가 옮겨놓다.
지금이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의 내 감상을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돌아볼 수 있는 건 트레바리 홈페이지에서 [내 독후감]만 모아볼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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