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난했다. 어머니와 나는 방 한 칸에서 하루하루 연명했으며, 어머니는 단 돈 만원이 없어서 자식에게 책 한 권을 사주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은 기억은 없다. 나라에서 주는 생활비가 수입의 전부였으며, 간간히 교회 어른들의 도움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쉰 기억이 없다. 학기 중에는 학교를 다니고, 방학 동안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행히 우리 나라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많았다. 각종 지원에 알바비가 더해지면 그럭저럭 몇 달을 견딜 만 했다.
3학년 학기를 마치자마자 입대를 했고, 제대 후 바로 복학했다. 신학을 전공했기에 바로 전도사 생활도 겸했다. 견뎌야 하는 무게가 남들과 달랐던 만큼, 쉽사리 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여전히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살아야 간신히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도 쉬지 못했다. 대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전도사는 그만두지 않았다. 평일에 시간이 남자 다른 일을 겸했다. 일이 늘어나니 힘은 들었지만, 매달 들어오는 돈이 부쩍 늘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1년 동안 쉬지 못했다.
몸의 이상함을 느낀 건 10월 즈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부쩍 힘들어지고 간간히 탈수증상을 보였다. 하루는 헛구역질이 멈추지 않자 반차를 쓰고 수액을 맞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버텼다. 11월이 되자 탈수증상이 잦아졌다. 퇴근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한 시간 정도를 뻗어 있었다. 우울함이 극도로 심해져 죽고 싶단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제법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12월이 되었을 때는 사람 많은 곳을 가는 게 두려워졌다. 공황장애였다. 그렇게 한 순간에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없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병원을 다닌 지 1년 정도 되었다. 우울증은 많이 괜찮아졌고 공황은 간간히 찾아온다. 답답한 상황에 놓이면 숨이 막히고 온 몸이 긴장된다. 처음에는 불만만이 가득했다. 가난한 홀어머니의 자식으로서, 나는 그저 열심히 살기만 했다. 친구들이 방학마다 여행을 다닐 때, 나는 언제나 돈을 벌었다. 군대를 가기 전에도, 제대를 한 직후에도, 나는 맘 편히 쉬지 못했다. 부모에게 용돈을 받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찾아 온 게 공황이라니,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졌다.
증상이 조금 나아질 무렵, 인생에 큰 회의감이 찾아왔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삶이 굴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살다 보니 삶이 망가졌다. 그럴 바엔 뭐 열심히 사나 싶었다.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다. 우선 꾸역꾸역 끌고 가던 전도사 생활을 그만 두었다. 드디어 주말에 쉴 수 있게 되었다. 억지로라도 취미를 갖기로 했다. 피아노를 배웠고,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를 늘렸다. 소비를 늘리고 인생을 즐기자는 생각을 가졌다. 명상에 취미를 두고,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점점 삶에 여유가 생겼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바둑도 배우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바리스타가 꿈이 되었고, 언젠가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게 하고 싶은 건 바로 하라고 권했지만, 내게는 그저 철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양가 부모 밑에서 돈 걱정 없이 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일 뿐이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여유를 가지려 하자, 없던 시간이 생겼다. 자기 전에 30분을 투자하면 명상과 스트레칭을 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에 관심을 가지니 퇴근 후 여유가 생겼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전도사는 절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작 내려놓으니 달라지는 건 없었다. 대신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짐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 대신 해야 하는 일을 택했지만, 해야 하는 일을 조금씩 내려놓자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생각해보니 남을 위한 인생이었다.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꿈을 내려놓았고, 종교적 가치를 위해 쉼을 포기했다. 공황을 인생의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몸의 투정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조금 가져 달라는 칭얼거림이었다. 어떻게 보면 몸의 질투였다. 그렇게 몸은 내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예전에는 발작이 오는 게 참 힘들었다. 벗어나야 하는 고통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하루를 되돌아본다. 무엇이 내 몸을 힘들게 했는지 생각해보고, 심호흡과 스트레칭도 해본다.
세상은 열심히 살기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지만, 고생 가운데 무너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감히 그대에게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굳이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냥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어쩌면 그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며, 세상의 요구와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한 번 정도는 자신의 행복을 취해도 괜찮다. 오늘도 삶이 퍽퍽한 그대여, 삶의 무게에 지쳐 쓰러지기 전에 이쯤에서 한 번 쉬어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