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o Nov 22. 2020

어머니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어머니는 불쌍한 사람이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며, 그녀에게 남은 건 세 살 배기 아들뿐이었다. 남편의 가족들은 그녀에게 재혼을 권했다. 아들은 본인이 키울 테니, 좋은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아직 젊은 그녀를 위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남편을 남은 여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선택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뿐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가족들에게 이 아이를 잘 키워내 서울대에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과부의 짐을 지기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해 강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학원 원장이 되기로 했다. 애비 없는 아들이 어디서 기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예민했다. 회초리를 들어가며 젓가락질을 가르쳤으며,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면 심하게 꾸짖었다. 언젠가 아들이 애비가 없다는 이유로 욕을 먹을까봐, 어머니는 노심초사 자식을 키웠다. 어머니는 자식을 엄하게 키우려 했지만, 자식은 친근한 어머니를 원했다. 남들에게 무시 받아도 되니, 내가 잠에 들기 전에 어머니가 들어오기를 원했다. 교양이 없어도 되니, 아플 때 어머니가 옆에 있기를 바랐다.

거듭 말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홀로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기에 그녀는 너무 어렸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그녀는 크고 작은 사기를 당했으며,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남편을 잃은 뒤 7년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다음 해 친언니가 자살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고작 십 년 만에 남편과 언니,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다. 거짓말처럼 가세도 점점 기울었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언제나 노력을 요구한다. 열심히 살면 어떤 상황도 극복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또한 그 말을 믿는다. 신분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도 아니지 않는가. 그야말로 평등한 세상인데 노력으로 안 된다는 게 더 이상하다. 물론 사람들도 마냥 순진하지 않기에 간간히 의심을 한다. ‘정말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상을 받을까?’ 이런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가 많다.

그들은 노력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종종 신체가 불편하지만, 큰 성과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소년소녀 가장들도 보인다. 그들의 노력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없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내 불만은 그들을 소비하는 세상의 방식에 있다. 세상은 힘든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노력을 요구한다. 이렇게 힘든 사람들도 힘을 내는데, 우리가 힘을 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힘든 상황에도 성공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힘듦을 극복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내가 그들의 노력을 폄하한다는 오해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난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대단하다. 대단한 건 그들이다. 쏟아지는 불행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들이 대단하다. 절대 그대가 못난 게 아니다. 세상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무기로 그대의 노력을 평가한다. 풍족한 상황 속에서도 왜 성공하지 못하냐고 책망한다. 세상의 유혹은 굉장히 치밀해서,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을 채찍질 한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번 아웃되고 만다.

내 어머니는 지금 정신병동에 있다. 물론 남편을 잃은 모든 여자가 조현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사업에 실패한 모든 사람이 정신병원에 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조현병의 책임을 모두 어머니에게 돌려도 되는가? 남편과 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잃었지만 꿋꿋히 견뎌야 했을까? 건물주의 횡포에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했어야 했을까? 어머니가 더 노력했다면 가세가 기울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은 우리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았다. 대체 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했을까?

나는 감히 그대에게 너무 열심히 살지 않기를 권한다. 어차피 인생은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말이 의심된다면 그대의 삶을 돌아보자. 어릴 적 꿈꾸던 그대의 삶과 모두 일치하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한의사가 꿈이던 친구는 지금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당연히 목사가 될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마케터로 활동 중이다. 아쉽게도 인생은 노력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열심히는 살지 말자. 남편을 잃은 여인이 20년 후 조현병에 걸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은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 가운데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단 한 가지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자.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면, 조금은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만약 지금까지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속는 셈치고 한 번 그냥 살아보자. 물결에 몸을 맡기는 물고기처럼, 그저 가만히 인생을 즐겨보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 재밌게는 살아 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전 03화 아쉽게도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