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2021년 코시국으로 인해 얼렁뚱땅 대학교 3학년을 끝내고 나니 나의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진로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대로 4학년으로 올라가기엔 취업 스펙이 부족해, 조금 더 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어! "
뭐... 이건 다 핑계고. 그냥 휴학 1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23살 아직 파릇파릇하게 젊은 나이. 사지 멀쩡하고, 체력이 짱짱하게 받쳐줄 때 여행하는 게 맞는 거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다!
그럼 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선택했나.
전에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던 대학교 선배가 휴학을 했을 때 3개월 유럽 배낭여행을 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가 그 여행에서 유럽의 웬만큼 유명한 도시와 나라들은 다 방문했던 터라 어떤 도시, 나라가 제일 좋았는지가 문득 궁금해져 물어보았다.
그녀는 콕 집어 스페인과 포르투를 언급하며 너무 좋아서 다음에 또 갈 것이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당시 21살이었던 나는 이렇게 '이베리아 반도 여행' 버킷리스트를 추가하게 되었다.
시작은 역시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부터 온다.
여행 자금은 철저히 내 돈으로 마련하였다. 약 3년간 계속 일했던 카페에서 버는 수입은 내 생활비로 나가서 새로운 수입원이 필요했다. 마침 휴학을 한 탓에 평일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평일에 할 수 있는 영어 학원 보조 선생님 일을 하게 되었다. 해외 나가서 영어를 많이 쓸 테니까 공부도 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평일에 영어학원 주말에 카페일,, 주 7일을 일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그래도 영어 학원일은 주휴수당이 붙어서 여행자금을 모으는데 3개월로도 충분했다.
돈이 해결되고 나니 더 중요한 치안문제가 남아 있었다.
워낙 한국의 치안이 좋다 보니 외국의 치안이 걱정되는 건 당연지사.
처음에는 혼자 가겠다고 선언했지만, 혹시나 하는 내 안의 걱정인형이 일어나 유럽여행카페에 동행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여행 루트, 여행 시기, 그리고 숙소를 함께 사용할 같은 성별. 이 모든 것이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또한 이런 식으로 같이 여행할 사람을 구해본 것이 처음이라 동행하는 사람의 성격과 여행 스타일은 운에 맡겨야 하는 복불복, 그 자체였다.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대뜸 톡으로 mbti를 묻는 건 실례가 아니겠는가. (물론 mbti 하나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새로운 성향의 사람을 만나서 여행 내내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것. 그것 또한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니 같이 동행할 든든한 친구를 얻었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게 되었다.
17일 동안의 여행코스는 포르투(in)-리스본-세비야-그라나다-바르셀로나(out)로 2개국 5개 도시 여행을 계획하였다. (원래는 신트라를 포함해서 2개국 6개 도시를 계획했으나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포르투 3일 리스본 3일 세비야 4일 그라나다 2일 바르셀로나 4일 일정이었는데 근교 도시를 안 간 것을 고려하면 꽤 여유로운 편이었다.
여행에 있어 여유를 중시하는 나는 꼭 가고 싶은 관광명소, 맛집 등만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두고 여행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았다. 단체관광이 아닌 만큼 배경지식 공부는 필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여행에서 겪는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몇 배 이상의 값어치로 다가오길 바라며 열심히 책을 탐독하며 공부했다. 이와 더불어 스페인어도 조금씩 배워나갔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랄까?
유류세 증가로 2배가 되어버린 비행기 가격, 물가상승률에 따른 비싼 숙소들, 소매치기 방지용 고리. 이 모든 험난한 여행 준비 과정에서 얻은 건 설렘보다 걱정이었다. 과연 내가 혼자서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머나먼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을까? 이런 수많은 고민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출국날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유롭게 떠나서 청춘을 즐기자! Va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