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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 ming Nov 28. 2022

내 생애 첫 외국인 친구

2022년 10월 25일


포르투를 떠나 리스본으로 이동하는 날.

우리는 10시 반 FLIXBUS를 예약해서 볼트를 타고 Campanha역으로 향했다. (FLIXBUS는 10% 국제학생증 할인이 가능하다.)


FLIX 버스 정류장


기다리고 있으면 역무원이 표를 확인해주고, 위치를 알려준다. 표는 미리 QR로 애플월렛에 넣어두기!


그런데 버스 줄을 늦게 서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서 Y와 떨어져서 타야 했다. 나는 한 흑인 남자분 옆에 앉게 되었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말을 걸어왔다.





"Hi. Where are you from?"

(안녕. 너 어디서 왔니?)


"I'm from Korea. and you?"

(나는 한국에서 왔어. 너는?)


"Brazil~"

(브라질~)




브라질에서 온 친구의 이름은 휴고로 리스본에서 마케팅 분야 일을 하고 있었다. 휴가를 맞아 포르투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그는 나에게 리스본에서 갈만한 맛집, 명소들을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계속해서 대화를 했다. K팝, 한국의 교육열 문제, 저출산 문제, etc... 한국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덕분에 나는 한결 수월히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레드벨벳 ice cream cake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같이 가사를 분석해줄 정도)


반면 나는 브라질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쌈바, 축구, 아마존이 다였던 탓에 올해 월드컵 우승은 누가 할 것인지, 아마존이 갈수록 파괴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재미있었던 포인트 하나




휴고 : Why do you learn Spanish?

(왜 너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거야?)


나 : I heard that spanish is used for many countries like South america.

(나는 스페인어가 남미 같은 많은 나라에서 사용한다고 들었어.)


휴고 : You completely misunderstand. Actually, All of the south america countries don't use Spanish. My country Brazil uses Portugese.

(너 완전 잘못 알고 있어. 사실, 모든 남미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쓰는 것은 아니야. 내 조국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고.)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지리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붙어있는 탓에 언어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옛날 대항해 시절 두 나라가 신대륙 탐험에 나서며 많은 나라를 침략했고, 그 탓에 두 언어 모두 남미의 나라들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휴고 덕분에 브라질은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며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휴고가 사준 빵과 주스


버스는 달리고 달려 거의 도착할 때 즈음 휴게소에 들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휴고에게 무지 배고프다고 말했다. 그러자 휴고가 휴게소에 한번 가보자고 했고, Y와 셋이서 밖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휴게소 음식 가격은 사악했다. Y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리스본에 도착해서 음식을 먹기로 하고 포기했던 상태. 그런데 휴고가 갑자기 빵이랑 주스를 사 오더니 우리 먹으라면서 주는 게 아닌가. 휴고 Obrigada!(포르투갈어로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인류애를 느끼며 잠시 배를 달랠 수 있었다.



oriente 역


3시간 넘게 휴고와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리스본 oriente 역에 도착하였다. 고마운 내 생에 첫 외국인 친구와 아쉬움의 포옹을 나누고 다음에 리스본에 오면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여행에서 이동 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오랜 대화를 나누는 것... 마치 영화 '비포 선 라이즈'의 한 부분 같았던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리스본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Goodmorning solo hostel'로 리스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있었다. 리스본의 첫인상은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숙소까지 데려다준 볼트 기사님을 비롯해 호스텔 위치를 알려준 직원, 심지어 기념품샵에 묻힌 입구를 손으로 가리키던 노숙자 할아버지까지. 벌써부터 이런 인류애에 도시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숙소는 완전 인싸들로 가득했다. 우리 숙소는 6인실이었는데 방 안에 있던 미국 출신 줄리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약 50일 넘는 시간을 혼자 여행 중이었는데 리스본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라고 하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혼자서 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케밥과 치킨(?) 빠에야


하루 종일 휴고가 준 빵과 주스 밖에 먹지 못한 탓에 아사 직전인 Y와 나는 바로 점심 겸 저녁을 먹으로 시내를 나섰다. 쌀이 너무도 먹고 싶었던 우리는 빠에야 맛집을 찾아왔는데 케밥도 같이 파는 중동 느낌의 음식점이었다. 케밥과 치킨 빠에야를 시켰는데 두 메뉴다 맛있었다. 사실 배고파서 뭔들 안 맛있겠냐만. 여행하면서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밥은 한 번씩 생각이 났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닌가 보다.


그라사 전망대 올라가는 길



오늘 리스본의 마무리는 알파마 지구에 있는 '그라사 전망대'. 'Miradouro sophia de Mello Brey'라고 부른다. 리스본이 포르투보다 훨씬 길이 가파르다고 Y가 이야기해줬었는데 확실히 경사가 심하고, 길도 돌길이었다. 유럽여행을 할 때는 운동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일몰 시간에 맞추어 올라가서인지 한 번씩 힘들 때마다 멈춰서 바라본 풍경은 전망대의 풍경을 더 기대되게 만들었다. 리스본 역시 포르투와 마찬가지로 그라피티가 곳곳에 많았는데 주로 이주 노동자나 외지인들이 자신들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그림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전망대 전경


20분 정도 열심히 올랐더니 전망대 카페와 함께 리스본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때마침 하늘에는 해가 걸터앉아 일몰이 펼쳐졌다. 적당히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과 이국적인 풍경,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좌측에 위치한 상 조르제 성



그라사 전망대의 또 하나 장점은 바로 상 조르제 성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도가 완성한 이 성은 도시의 현대식 집들과는 동떨어져 있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시간이 된다면 저곳도 방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넘어가고 건물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리스본의 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Y와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 둘 읊어보며 각자가 추천하는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배경에 입혀질 때 풍경은 훨씬 감성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내 안의 감성 세포가 차오를 때쯤 누군가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어떤 동양인 남자였는데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미리 알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인 친구를 말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홍콩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이곳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본인의 숙소를 자랑하며 자연스럽게 자기 말고도 2명의 친구들이 있다며 같이 술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그 순간 우리는 수락할지 말지 고민을 했는데 Y가 먼저 거절의 의사를 비췄다. 호스텔에 돌아가서 웰컴 드링크를 마신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남자를 뒤로 한채 전망대를 내려왔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이미 테이블에 술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누가 먹던 술을 먹는 것은 꽤 위험하기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전망대 카페는 술 가격이 비쌀 확률 100%.



숙소에 돌아와서는 리셉션에서 웰컴 드링크를 마셨다. Y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종인 상그리아 한 잔,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한 잔을 들고 리셉션과 연결된 발코니로 자리를 옮겼다. 발코니는 신시가지의 중심지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술 한 잔을 먹으며 Y와 나눈 대화의 주제는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부모님이 자주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을 혼자만 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평소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Y는 오히려 열심히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하는 나를 부모님이 대견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왜 나는 여행에서 오는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평소 돈을 아끼고, 아끼는 것일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길을 잃은 어른이 되어 마냥 노는 것은 옳은 것인가? 문득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렁이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뒤로하고, Nobody가 되어 여행의 일순간을 느끼기로 했다. 지금 우리 뒤에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뺨치는 수준의 외모를 가진 남자를 흘끗 쳐다보면서. (아쉽게도 그날 밤 이후로 더 이상 호스텔에서 그 남자를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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